<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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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런 건 아니다라니? 여기는 엄숙한 재판정이다.모호한 말은삼가도록 하라.옥정이를 언제부터 건드렸는지 분명하게 대답하라.” 기달이 관 위 문짝에 걸친 엉덩이를 두어 번 들썩였다. “다시 말하건대,나는 마누라가 죽은 후 불쌍한 옥정이를 혼자키우느라 고생을 했을 뿐,건드린 적은 없다.매를 좀 때린 것 외에는.” “아빠가 자기를 덮쳤다고 그러던데?” “이전에 있던고아원 원장보고도 아버지라고 부른 모양이다.” “그럼 그 고아원 원장이 옥정이를 덮쳤던 말이야?” “자세한 건 모르겠다.아마 그런 일들이 충격을 주어 옥정이 정신이 저렇게 된 것 같다.” “네가 옥정이를 고아원에서 데리고 올 때도 옥정이 정신이저러했느냐?” “저렇게 심하지는 않았다.좀 멍한 기색은 있었지만,고아원에서 외롭게 살다 보니 정서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어 그런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 “네가 건드려서 더 심해진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옥정이에게 직접 물어보라.내가 그랬는지.” 기달이 옥정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옥정아,고아원 아빠가 그랬느냐,여기 아빠가 그랬느냐?” “여기 아빠가 그랬다.” 옥정이 손가락으로 무릎을 꿇은 채 뒤돌아보는 자기 아버지를 가리키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거짓말을 할 셈인가? 옥정이 분명히 너를 가리키지 않느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아이의 말을 믿을 수 있느냐.두 아빠를 혼돈하고,과거와 현재를 혼돈하고 있음에 틀림없다.”“옥정에게 물어보라고 한 자가 누군데 이제 와서 발뺌을 하느냐. 한가지 더 묻겠다.네가 지금은 안경을 쓰지 않지만 평소에는쓰고 다니느냐?” “안경의 안 자도 모르는 사람이다.내가 안경잡이라면 옥정을 찾으러 나온 지금 더 챙겨서 안경을 써야 되지않겠느냐?” “그럼 전에 옥정이가 있던 고아원 원장은 안경을 썼느냐?”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 목사인가?”“목사인지는 잘 모르겠다.아무튼 종교단체와 연관이 있는 고아원인 것은 알고 있다.” 기달이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될지 몰라용태와 다른 단원들을 둘러보았다.용태가 최고형을 선고하라는 뜻으로 오른손 엄지를 아래로 향하며 눈을 꿈쩍거렸다.글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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