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스포츠정신 무너져버린 한국 스포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한국 스포츠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축구에선 중국 도박업자들이 한국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아마추어뿐 아니라 실업축구에서도 선수는 물론 감독과 심판, 구단 관계자 등 상당수가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프로축구 K-리그까지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거액의 사기 도박판을 벌이는 업자들이 한국 경기의 승부를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했다는 것이 사건의 요지다. 그동안 7대0이나 8대2 등 축구에서 나오기 힘든 스코어가 속출한 배경을 짐작케 한다.

프로야구에선 감독이 자기 측 투수에게 내리는 사인을 상대팀 타자에게 알려주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는 폭로가 나왔다. 김재박 LG 감독은 “한국 야구위원회가 이를 공론화해 근절시켜야 할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선수들이 스스로의 개인 성적, 다시 말하면 연봉을 올리려고 상대팀과 사인의 내용을 거래한다는 것이다. 이는 감독의 작전에 차질을 빚을 뿐 아니라 경기 결과까지 뒤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팀과 관중 모두에 대한 배신행위다.

국가와 사회가 스포츠 육성에 힘을 쏟는 이유는 스포츠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보편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통해 청소년과 성인에게 도덕적인 성격과 기풍을 고취한다는 데 큰 뜻을 두고 있다.

스포츠 경기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페어플레이는 핵심적인 존재 조건이다. 관중이 응원하고 몰입하고 흥분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겨룬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너질 때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축구에서는 경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죄행위를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 긴요하다. 다음은 야구협회·축구협회가 나서서 대대적인 자정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비리 가담자들을 자체적으로 색출하고 준엄하게 징계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