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현실은 이보다 복잡하지만 협상에 재능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2000년 가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리처드 홀브룩은 숙제를 안고 있었다. 미국의 유엔 예산 분담금을 현행 25%에서 22%로 줄이라는 의회의 요구 때문이었다. 미국 대신 자국의 분담금을 늘려주겠다는 나라를 찾아내는 게 핵심 과제였지만 그런 나라는 없었다. 각국과 연쇄 접촉을 하던 홀브룩은 숨어 있는 걸림돌을 찾아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2001년도 예산이 이미 확정된 터라 증액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홀브룩은 2002년부터 증액해 달라고 요구하는 전략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시기라는 걸림돌을 해결하자 증액 문제의 협상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을 둘러싼 6자회담에는 이런 묘안이 없을까.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2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재개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이 덩달아 핵무장을 요구받는 상황을 포함해 걱정거리가 많다. 북한으로서도 핵무기를 끌어안은 채 헐벗고 굶주리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북한은 회담을 진척시키는 듯하다가 어깃장을 놓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북핵 협상에 관여했던 정부 고위관계자의 분석이 생각난다. “북한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내부 합의를 끌어낼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사실이 그렇다면 6자회담은 루스벨트의 선거본부장도, 홀브룩 전 대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상대방이 협상을 타결시킬 능력 자체를 갖추지 못한 상황이니까.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