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사생활 위협하는 전화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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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만약 전업주부들에게 현대생활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남편과 전화중 한가지만 택하라면 무얼 택할까.아마도 적지 않은 주부들이서슴없이 전화를 택할 것이다. 주부들에게 전화란 단순한 하나의 기계가 아니다.어른들과의 갈등에서 아이들 학교문제,자신의 건강관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일상사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게 해준다. 사실 여성들에게 있어.수다'는 정신건강 유지에 소중한 존재다. 많은 과학적 실험들은 남자는 오른쪽 뇌가 관장하는 수리능력이 뛰어난데 비해 여자는 왼쪽 뇌가 관장하는 언어능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또 여자는 뇌의 감정영역과 언어영역 사이에 신경 연결체가 남자보다 수억개가 더 있다.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여자의 뇌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능력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반면 남자의 뇌는 수리능력,즉 도움을 얻으려면 어디로 갈 것인지등을 결정하는 능력을 발전시킨다.따라서 남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데 반해 여자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려 하는 것이다. 수다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게 해주는 이 보물단지같은전화를 전업주부들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자들이 있다. 써오던 애기침대와 그네를 판다는 광고를 한 생활정보지에 냈던주부는 첫 전화로 물건을 넘겼는데도 다른 생활정보지들이 본인에게 확인하지도 않은채 잇따라 이를 게재하는 바람에 한동안 정보지가 나올 때마다 40~50통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주부도 입주 2~3개월 전부터 수십군데의 부동산중개소들의“전세를 놓거나 팔지 않겠느냐”는 전화에서부터 이삿짐센터.인테리어업자들의 전화공세로 날을 지새야만 했다. 뿐만 아니다.원하지도 않은 부동산 정보를 가르쳐 주겠다며 10분 넘게 질질 끄는 부동산업자들의 전화에,마사지 무료쿠퐁을 보내주겠다는 화장품판매업소 판촉전화,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이런저런 설문조사전화등 주부들은 벨소리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주부들도 바쁘거나 쉴때는 아예 전화코드를 빼어놓거나 전화번호를 하나 더 신청해 친한 이들에게만 가르쳐 주기도 하고 아예 자동응답기만 켜놓았다가 선별해 전화를 받는등 갖가지 묘책을 펴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 다.생활정보지가 구매자와판매자를 중계토록 한다든지,시민불만신고센터를 만들어 전화번호 누출을 철저히 단속하는등 사생활권(私生活權)보호에 행정당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 전화가 발명된지 어언 1백21년.지하에 잠든 벨이 이즈음 한국에서 당하고 있는 주부들의 고통을 보면 뭐라 할지 궁금해진다. 홍은희 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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