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회오리>숨가빴던 은행.官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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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보철강에 대한 최종 부도 처리에 이르는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재정경제원과 채권은행단은 몇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고 불황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밀고 갔으나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 총회장이 끝내 채권은행단이 제시 한.경영권 포기-한보철강 은행관리'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부도로 결론이 난 것이다.
…한보철강에 대한 처리는 22일 오후부터 숨가쁘게 돌아갔다.
오전11시 신광식(申光湜)제일은행장이 은행감독원을 찾아가 이수휴(李秀烋)원장과 의견을 조율했다.오후4시 제일.조흥.외환.산업은행등 채권 은행장들이 모여 이날중 한보에 대한 처리 문제를결론지을 예정이었다.오후6시30분쯤 회의 결과를 발표할 계획까지 잡아 놓았다.
그런데 회의 도중 모처에서 전화가 걸려왔다.한보측이 새로운 제안을 할테니 오늘중으로 결론을 내지 말고 23일에 다시 모여논의해 달라는 전갈이었다.
이날 밤 청와대와 재경원.채권은행단들 간에는 ▶부도를 내지 않는 대신▶鄭총회장이 보유주식을 내놓고 경영권을 포기하며▶한보철강에 대해 은행관리에 들어가는 시나리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전해졌다.
…23일 채권은행단은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렸으나 한보측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鄭총회장이 오전9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오전11시쯤 채권 은행장들이 다시 만나대책을 숙의했다.
오후1시30분쯤 제일은행은 한보측으로부터 주식담보 관련 서류를 접수하려다가 경영권 포기각서가 없어 접수를 거부했다.
제일은행은 담당 부장을 한보측에 보내 정보근(鄭譜根)회장을 만나 담판을 시도했으나 끝내 각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이에 채권은행단은 오후4시 채권단 대표자회의에서 22일 밤 협의한 시나리오대로 추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한보측에도 이미 오후4시가 최종 시한임을 통보했다.오후4시 제일은행 관계자와 鄭총회장이 모처에서 만났다.제일은행측은 보유 주식 을 내놓고 경영권을 포기하며 은행관리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鄭총회장은 변호사와 협의하겠다며 그 문서를 들고 가더니만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부터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채권은행단은 물론 재경원.청와대도 함께 긴장에 휩싸였다.한보측 대리인은 경영권은포기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결국 보람은행 서울 삼성동지점에서 이미 1차 부도 상태던 15억원의 어음을 부도처리했다.
재경원 관계자는“23일 오후4시를 기한으로 한보측과 밀고 당기기를 했는데 끝내 거부함으로써 정부도 더 이상 망신당할 수는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재경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한보측이 1,2금융권에서 빌린 자금 외에도 사채 시장에서도 엄청난 자금을 끌어들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분석했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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