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3者 인수 관련 한보그룹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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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보철강에 대한 채권은행들의 최후통첩에는 한보 문제에 더이상휩쓸려서는 안된다는 정부 고위층의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실제로 채권은행들은 지난주말과 이번주들어 청와대는 물론 재정경제원과 은행감독원 관계자들과 연쇄 접촉을 갖고 한보의 처리방안을 협의해 왔다.
특히 22일 정부 고위당국자로부터 한보 처리문제를 은행들의 자율적인 결정에 맡기겠다는 방침이 전해졌으며,이날 오후 4개 채권은행장 회의는 한보측에 제3자 인수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키로하는등 상황이 숨가쁘게 전개됐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이날“당초 한보가 당진제철소를 건립할 때도 한보의 자금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아래 반대했었다”며 “그 이후 공사가 진행되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돈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한보는 항상 채권은행단에 손을 내밀면서.이번 한번만 지원해주면 된다'는 식으로 자금을 요구했다”며“대출규모가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채권은행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상황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정부는 가급적 완공 때까지 한보를 끌고갈 생각이었으나 채권은행단이 두손 들어버렸다”며“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가는 의혹만 사게 돼 채권은행단에 처분을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승수(韓昇洙)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도 22일 저녁“한보 문제는 은행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밝혀 정부가 개입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물론 한보철강이 제3자 인수로 가닥이 잡히기까지는 큰 진통이있었다.채권은행들의 반발이 가장 큰 문제였다.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경우 우성.유원건설등 대형 거래업체들의 잇따른 부도로 이미 휘청거리고 있는 터에 한보철강에 더이상 물 려들어가다가는회생불능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8일 1천2백억원을 공동지원한 이후에는 사실상 추가지원을 거부해왔다.나중에 정치적.법률적으로 책임추궁당할 가능성에 대비,한보에 관한한 모든 주요 결정사항을 이사회에서 투표 로 결정할 정도였다.조흥과외환은행은“주거래은행도 아닌데…”라며 몸을 사렸고 산업은행 역시“더이상의 위험부담은 감수할수 없다”며 버텼다.더구나 이들 4개은행 관계자들은 그동안 한보에 대한 자금지원이 반드시 은행만의 자율적 결정은 아 니었다는 점을 직간접으로 얘기해왔다.그만큼 한보에 대한 지원에 금융외적인 작용이 컸다는 얘기다.
당국도 그동안 고심을 거듭해 왔다.한보철강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명분을 들어 은행들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긴 했지만 무리한 자금지원 과정에 야권 일각에서까지 의혹을 제기하는등 정치문제화할 가능성이 짙어지자 서둘러 문제해결에 나선 것으 로 관측되고있다. 아무튼 3자인수로 가닥이 잡힌 한보철강의 앞날도 그리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손병수.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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