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신주쿠 환락가서 酒店 '에포페' 경영하는 프랑스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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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환락가로 꼽히는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의 가부키초(歌舞伎町)거리.술과 성(性)이 범벅된 다국적.하수구문화'가 넘쳐 흐르는 곳이다.그래서 한국인 여행객,특히 일본이 초행인 남성들에게 한때 필수코스로 여겨지기도 했다. 프랑스 출신의 조르주 네란(76)신부는 가부키초 한복판의술집전용 빌딩 4층에서 17년째 주점.에포페(Epope)'를 경영하고 있다.그가 세든 위저드(마법사)세븐 빌딩에는 일본인은물론 한국계.중국계.동남아계 주인들이 경영하는 3 0여개 업소(스낙크:스낵의 일본식 발음)가 성업중이다..스낙크'는 한국의단란주점에 해당하는 술집의 일본식 용어.그러나 에포페는 다른 곳과 달리 손님 시중을 드는 여종업원이 없다.
이 거리에 사제(司祭)인 네란 신부가 술집을 차린 것은 지난80년..퇴근후 한잔 걸치는 직장 남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자'는 목적에서였다.천주교 도쿄교구내 신자들을 중심으로 주주를 모집해 자금을 만들었다.지금도 에포페는 자본금 2 천만엔(약 1억5천만원),주주 2백15명의 엄연한 주식회사다.
창업 과정에서는 일부 동료 신부.천주교 신자들의 걱정과 만류를 무릅써야 했다.그러나 지금은 도쿄교구의 시라야나기 세이이치(白柳誠一)추기경도 기꺼이 주주가 돼 가끔 한잔 하러 들를 정도가 됐다.가게이름 에포페는 원래 프랑스어로.서사 시(敍事詩)'라는 뜻이지만 네란은.아름다운 모험'이라고 번역해 명함에도 박아넣었다.
천주교신자.교수.작가등이 에포페의 단골이다.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소설가로 최근 타계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이 가게의창립주주이자 네란 신부와는 오랜 친구사이였다.“개신교 목사님 몇분도 자주 오신다”고 이곳에서 3년째 아르바이 트 종업원으로일하는 한국인 권태수(28)씨는 귀띔했다.조치(上智)대에 유학중인 권씨는 다니는 성당의 한국인 신부의 소개로 가게와 인연을맺었다. 요즘 네란 신부는 영 장사가 안돼 고민이다.그의 장삿속은 두가지.가게에 손님이 많이 오는 것과 그 손님들이 속속 가톨릭 신자가 돼주는 일이다.“내가 지금까지 60명에게 영세(세례)를 주었는데 대부분 이 가게 손님이었어.그런데 요즘 은 영 장사가 안돼”라고 그는 안타까워했다.한창때는 한해에 8명을신자로 낚았는데 95년은 겨우 3명,96년에는 한명도 건지지 못했다.“젊은층이 스포츠나 노는데만 관심이 있어.아무리 궁리해도 신자가 늘지 않아”라는 걱정에서 그의 투 철한.직업의식'이엿보인다.
프랑스 리옹 태생인 네란은 지난 50년 일본에 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한국과는 10여년전 경주 관광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그는“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몇차례 만난 적이 있다”며“매우 평판 좋은 분”이라고 치켜세웠다.그는 요즘 기도할때 부탁보다 감사와 찬미를 앞세운다고 한다.17년에 걸친 극동지역에서의.아름다운 모험'에 대해서도.
[도쿄=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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