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리포트>홍콩 언론자유 물건너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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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으로의 반환을 5개월여 남기고 홍콩 언론들의 중국 눈치보기가 한층 확연해지는 양상이다.
중국의 신경을 건드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를 회피하거나 애써 축소하려는 태도가 자주 눈에 띈다는 얘기다.
과거 중국이 노발대발할 정도로 때로는 중국에 관한 여러 소문을 여과없이 보도했던 홍콩 언론으로서는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없다. 지난해말 대만 언론들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건강악화설이 나왔을때 홍콩 최고의 정론지 명보(明報)가 침묵을 지킨 것이 변화된 홍콩 언론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명보는 93년10월 시양(席揚)기자가 중국의 금융정책 기밀을훔친 혐의로 체포된 이래 2년 가까이 중국과 껄끄럽게 지내온 신문.그러나 불편한 관계가 언제 있었느냐싶게 명보는 건강악화설대신 지난 14일.鄧건강 양호'라는 기사를 1 면 머릿기사로 올렸다.대만이나 서방측의.중국 흔들기'에 쐐기를 박자는 의도로보는 견해가 유력했다.
홍콩 언론들의.중국 편들기'는 지난해말 구성된 임시입법회 관련 보도에서도 잘 드러난다.중국주도의 임시입법회 구성에 반대해시위를 벌인 민주파 인사들에게 따가운 질책을 가한 것이다.
홍콩 언론의 변신 배경에 중국의.무언(無言)의 검열'이 깔려있음은 물론이다.중국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보도의 내용과 수위를 스스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첸치천(錢其琛)외교부장이나 루핑(魯平)홍콩.마카오판공실 주임은“홍콩의 언론자유는 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함으로써 홍콩 언론의.자기검열'을 사실상 강요하는 형국이다.
지난 10일 폐막된 아태신문편집자회의에서 홍콩의 부총독격인 앤슨 찬(陳方安生) 포정사(布政司)가“홍콩 언론들은 자기검열의함정을 피해 스스로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이같은 자기검열의 존재를 처음 공개적으로 거론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언론자유를 지키려는 언론사들은 하나둘씩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지난해말 로이터통신사가 아시아지역본부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한데 이어 인기 시사지 구십년대(九十年代)도 대만으로 본사를 옮 기기로 결정했다. 전환기에 선 홍콩 언론의 변신이 홍콩의.다가올 세월'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홍콩 언론의 대응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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