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정축년 환영에 밀려난 병자년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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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축(丁丑)년은 아직도 재너머에서 소걸음을 하고 있는데 이미소해가 됐다고 호들갑들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쥐해인 병자(丙子)년이라는 사실이다.신문과 방송들의 호들갑 때문에 오지도 않은 정축년의 환영(幻影)이 가지도 않은 병자년의 실체(實體)를 뭉개버린 꼴이 돼버렸다.
한데 이것을 잘못이라고 여기는 신문이나 방송은 거의 없는 것같다.다 아는 일인데 무얼 그런 것을 잘못이라고 하는냐는 식이다.말하자면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대로 저지르고 받아들이는 관행이 정착된 잘못은 잘못이 아니라는 공준(公準) 아 닌 공준이 생겨난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밑바탕의 흐름은 그렇게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닌 것같다.사회심리(社會心理)로나 정신풍토(精神風土)면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내는 대목의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들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끌어가야할 언론이 스스로 문제군(問題群)속에 함께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하나 새해의 신문에 나타나고 있는 혼란의 한가닥은 이른바 단기(檀紀)연호의 사용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가 싶다.새해인 서기(西紀)1997년이 단기로 몇년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지금신문들이 두 갈래로 엇갈린 표기를 하고 있다.서 기 1997년은 단기4330년이라고 정초부터 명기하고 있는 신문과 그렇지 않은 신문이 확연히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점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연호(年號)표기의 내력,그리고 양력과 음력의 구분을 명확히 안다면 아무런 혼란도 있을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한데 그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현실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의 정부수립과 함께 단기연호를 사용키로 공포했다.이때 단기연호의 기준은 옛역사에 기록된 단군(檀君)의무진(戊辰)년 개국(開國)설에 따라 서기보다 2333년 앞선 것으로 했다.
따라서 단기4281년(서기1948년)이래 우리나라의 공식 문서는 단기로 표기했었다.그러던 것이 1962년부터 단기연호가 폐지되고 서기연호가 공식화되었는데 이것은 5.16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부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단기연호 폐지에 대한 잘잘못은 차치하고 서기 1997년이 단기로 몇년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분명 4330년이 정답이다.따라서 신문표기에서 서기와 단기를 병기하는 경우 서기 1997년(단기 4330년)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단기연호를 음력과 함께 표기함으로써 혼선을빚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단기와 음력을 등식속에 넣어 계산함으로써 빚는 혼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기를 반드시 음력과 등식화할 이유를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단기는 서기에 대칭되는 개념이지,음력에 등식화해야 할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음력은 이른바 간지(干支)에 따른 계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웃음거리 干支 해석 간지에 따라 계산한다면 아직은 병자년이고 2월8일이 돼야 정축년이다.간지라고 하면 흔히 점(占)이나 역(易)의 속어(俗語)인양 여기는데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의 순환원리는 옛사람들의 생명사상과 슬기가 고스란히 담긴 학문체계임을 잊 어서는 안될 일이다.
정축년이 소해라고 해서 어떤 지도급인사는 정축년의 정(丁)은장정(壯丁)의 뜻이 있고 축(丑)은 소의 뜻이 있다는 글자풀이로 새해의 소망과 다짐을 했다고 보도된바 있는데 이런 풀이는 그야말로 그 수준을 드러내는 웃음거리일 따름이다 .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면 정(丁)은 병(丙)을 이어서.
초목(草木)의 무성(茂盛)'을 나타내는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이것은 십간(十干)의 세번째와 네번째인 병(丙)과 정(丁)은 한묶음으로 풀이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서 병과 정은 모두 불(火)의 성격을 지닌 글자인데 병은뻗어나가는 기세가 전성기를 지나 꺾이는 형세를 상징하는 글자고,정은 위를 치받아 기존세력에 대한 새로운 반대세력의 등장과 충돌의 무성함을 상징하는 글자다.
또한 십이지의 첫번째와 두번째에 속하는 자(子)와 축(丑)은전자가 쥐의 생식(生殖)증가를 상징하는데 더해 후자는 자년(子年)에 일어난 일이나 문제가 더욱 커진다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본래 축(丑)이라는 글자는 우( 又)와 을 합한 것인데 우는 손을 상징하고 은 손을 받친 것이므로 축(丑)이라는 글자의 뜻은 손을 들어 일을 벌인다는 것이 제격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글자풀이를 하면 정축년이라는 해는 병자년에 일어난 문제들이 점점 커져 충돌과 변화를 몰고온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옛 현인들은 이런 때의 해법을 원리(原理)와 원칙(原則)에 입각해 일을 도모하고 처리하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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