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집단건망증의 악순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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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연초 TV.신문의 주제어는 단연 대선(大選)인 것같다.TV뉴스는 물론 심지어 쇼프로그램의 주제어로.대권(大權)'이 단골로등장하는 것이나 신문 특집기사도 대선주자들의 인물분석등을 다투어 싣는등 올해가.대선의 해'임을 일깨워주곤 한 다.
반면 정작 선택권을 쥐고 있는 유권자들은 무관심해 보인다.회복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불경기에 한번 더 구겨질 살림살이가.발등의 불'이지 대선이야.강건너 불'쯤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대선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될 이유가 있다.지난해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12.12,5.18 재판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종이쪽지 하나로.대통령 뽑는 일'이 얼마나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인가 실감했 다.
이들은 집권 자체의 불법성과 재임중 비리문제로 재판을 받았고벌도 받았다.재임중 금전비리는 다툴 여지가 없었지만 집권의 내란적 성격등 불법성에 대해 이들은 결코 수긍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全.盧씨가 이번 재판을.정치재판'운운하며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손가락질하고 감형에 분개하기도 했다.그러나이들은 쿠데타를 했건 어쨌건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의 집권이 불법이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이들 내란집단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사실이다.결국 全.盧씨측이.현정권의 뿌리'임을 자처하며“국민이 계속 뽑아주는 정권이 어째서 내란정권인가”라고 항변할 수 있는 토대를 우리 스스로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든다.
한 변호사는“국민투표로 뽑힌 대통령을 내란죄로 법정에 세우려면 그를 뽑아준 국민도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말 신한국당이 새벽에 야당 몰래 국회에 들어가 노동관계법등을 통과시킨 사건을 다룬 한 신문만화가 떠오른다.여당대표임직한 인물이 분노하는 국민들을 보며 대선 걱정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것이 있지.국민들의 건망증 ”이라며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박종철 고문치사사건등을 내리 겪었던 국민들이 계속 내란집단에 표를 던졌던 것과 같은.건망증'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집단 건망증'의 부메랑은 잘못된 선택만을 반복하게 할 뿐이 다.
잘못된 선택으로 다시 분노하지 않고,국민은 쉽게 잊는다며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위정자들에게 국민의 준엄함을 보여주기 위해신년계획 속에.바른 한표 행사하기'를 꼭 넣어야겠다.
양선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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