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끝에 무역회사 차린 외국인 근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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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임금체불.산업재해.폭행.폭언….이런 위험들을 감수하며 일하는 이 땅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갈까.대부분 몇년의 피땀으로 한 밑천 마련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 사업이나 장사를 시작한다고 판단하면 별로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공장 근로자로 일하며 번 돈으로 보란듯 한국 땅에 무역회사를 설립한 방글라데시 젊은이들이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모하메드 사이플 이슬람(27)과 나즈믈 하산(24)이 당사자다.두 사람은 각각 90년과 92년 입국해 가죽의 류.옷걸이.
테니스 라켓 공장등에서 일하며 모은 돈 2천5백만원씩을 투자해96년 5월 경기도시흥시에 무역업체 맨트러스트 인터내셔날㈜을 설립했다.
이후 6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최근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업활동에 들어갔다.
방글라데시 다카대 상경대 선후배인 이들 두명은 한국 땅을 밟을 때까지만 해도“미래를 위해 이를 악물고 몇년만 이 땅에서 고생하자”고 다짐한.보통 외국인'이었다.
이들이 모험을 걸기로 한 것은 94년 7월.한국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지내던 두 사람이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면서부터였다.
이곳 생활을 얘기하던 가운데 한국과 방글라데시 경제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고 두사람의 인맥이나 능력등을 종합해볼 때무역업을 시작하면 충분히 승산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사이플은 경영학을,하산은 경제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상적인 파트너 구실을 하기에 손색없었다.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95년 말부터 공인회계사등을 부지런히 찾아 다니며 법인설립을 추진했고 다른 방글라데시인들을대상으로 추가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결국 자본금 7천5백만원 규모의 회사를 세웠는데 96년 5월사이플이 대표이사,하산이 이사 명함을 각각 손에 쥔 것이다.
이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우선 불황에 허덕이는 한국 섬유업체의 제조기계들을 방글라데시로 수출하는 일이다.
한국에선 섬유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방글라데시에서는 촉망받는 산업이므로 업종전환을 노리는 한국섬유업체들의 기계를 싼 값에 확보하면 판로 확보는 어렵지 않다는 계산에서다.방글라데시산(産) 소.양가죽 수입 역시 이들이 성공을 확신 하는 분야다. 가죽의류공장에서 일했던 사이플이 눈여겨 본 결과 현재 국내업체들의 수입원가보다 30~50%가량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아울러 카펫.왕새우 수입과 화학약품,각종 중고기계 수출도 유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회사규모 확장등을 포함,이들의 포부는 크다.하지만 일단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표상이 돼야 하는게 최우선이다.“방글라데시에서도 번듯하게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자금이었지만 우리나라 근로자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한국을 택했다”며“꼭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방글라데시인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하산의 각오가 유난히 선명하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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