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출렁일 땐 연기금 따라해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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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증시가 다시 개미들의 무대로 탈바꿈했다. 주가가 많이 빠진 지금이 한몫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이 퍼진 까닭이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몸을 사리고 있는 반면 개인들은 과감한 베팅을 하고 있다. 12일에도 거래소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매매 비중은 66%를 기록했다.

그러나 활약상에 비해 실속은 신통찮다. 이와 달리 기관과 외국인은 거래가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서도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개미의 전략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얘기다.

◆선구안이 나쁜 개미=개미는 많이 내린 종목을 사서 오르면 파는 단타 작전을 쓰고 있다. 최근 급상승한 회전율을 봐도 그렇다. 거래대금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회전율은 지난달 22.6%로 2000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도 개인의 거래 비중이 높아질 때면 어김없이 회전율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충분히 빠진 것으로 판단하고 몰렸던 정보기술(IT)과 자동차·은행주가 맥을 못 추자 수익률이 나빠졌다. 개인의 거래 비중이 60%를 넘어선 지난달 31부터 이달 11일까지 개인이 많이 산 종목 상위 10개의 주가 상승률은 0.15%에 그쳤다. 그나마 상위 5개 종목으로 좁힌다면 -3%대로 떨어진다.

이런 현상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대신증권이 2003년 이후 개인의 거래 비중이 높아졌던 세 번의 시기를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2003년 4월과 2005년 12월엔 건설과 금융·증권업에 집중 투자했지만 수익률이 형편없었고, 2005년 12월은 은행주가 기대를 저버렸다.


◆실탄 넉넉한 연기금 주목=개미와 달리 연기금이 많이 사들인 종목은 9.66%, 투신은 9.28%로 상당한 수익을 냈다. 파는 데 더 열심이었던 외국인 역시 그 와중에 사들인 종목은 8.1%의 수익을 냈다.

특히 지난달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시장을 떠받친 연기금의 성적이 눈에 띈다. 단순히 지수를 받치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들인 게 아니라는 의미다. 연기금이 집중한 종목은 경기가 나쁠수록 빛이 나는 음식료·통신·유틸리티 업종이었다. 한국전력이 2위, SK텔레콤이 3위를 차지하는 등 투자 목록 상단이 경기방어주로 채워져 있다. 반면 개인은 이런 주식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연기금의 행보가 주목되는 건 현재 성과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탄이 풍부하다는 게 오히려 더 눈길을 끈다. 2009년 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비중을 올해 17%에서 20.3%까지 늘릴 예정이다. 현재 지수가 유지된다면 무려 17조원의 투자 여력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팔아댈 외국인이나 펀드 성적이 나빠지자 실탄마저 말라가는 투신의 공백을 메울 유일한 세력이다. 대신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로 투자 성과가 빼어난 데다 내년에도 가장 안정적인 주식 매수 여력을 보유하고 있는 연기금이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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