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수령들" 두권 번역.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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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옛 소련군 장성이자 역사학자였던 드미트리 볼코고노프는 지난해12월 사망할 때까지 반공산주의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인물로 유명하다.러시아 전사(戰史)연구소 소장으로 러시아 비밀문서보관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그가 발표한 글은 그대로 서구 언론의 톱을 장식할 정도로 충격적인 것들이 많았다.그런 그가 필생의 역작으로 남긴.크렘린의 수령들'(한송 刊)이 최근 두권으로 번역소개됐다.프랑스어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번역된 것이다.
.내가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역사관을 1백80도 바꾼 것뿐'이라던 그의 말처럼 이 책에는 러시아 역사에대한 통설을 뒤집는 비사들이 많다.레닌에서 고르바초프까지 러시아 지도자 7명의 가려졌던 어두운 면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볼코고노프가.신비성'을 벗겨낸 러시아 지도자들의 참모습이 궁금하다.레닌은 혁명지도자로 불리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냉혹한 선동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도.권력에 굶주린 살인마'에 지나지 않는다.
레닌의 경우 종교가 공산주의 최대의 적이었던 상황에서도 그 자신은 1898년에 장모의 뜻을 꺾지 못하고 교회에서 결혼식을올렸다.19년후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그는 러시아정교 성직자를 20만명 이상 살해하는 잔악성을 보인다.레닌은 또 혁명 막바지에는 러시아와 핀란드 접경 지역에 머물면서 혁명의 추이에 따라 달아날 태세를 취했던 기회주의자로 그려진다.
스탈린도 종교문제에서는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독실한 러시아 정교도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21세까지 신학교에서 신학을공부했다.그는 또 1946년까지도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정권과 장제스(蔣介石)정권을 놓고 양다리 외교를 펼 쳤을 정도로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비전이 결여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브레즈네프가 권좌에 머무른 25년동안 일기를 적었다는 사실도흥미롭다.브레즈네프는 자동차.시계.총기류.메달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였다.주로 그 자신이 수여하고 받았던 메달만 자그마치1백개에 달했다고 한다.
브레즈네프에 이어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안드로포프의 경우 브레즈네프에게 뇌물공세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여섯번째 러시아 지도자인 콘스탄틴 체르넨코도 사후에 현금이 가득 든 금고가 발견돼 보좌관들을 경악케 하기도 했다.옛 소련의 마 지막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서구 언론에 자신에 대한 기사가 하루라도 실리지 않으면 몹시 섭섭해했다고 전해진다.
한국관련으로는 한국전쟁당시 스탈린이 3차대전도 불사한다는 각오였다는 대목과 KAL 007기 격추 당시의 공산당 정치국회의록등이 관심을 끈다.
옛 소련군의 중장까지 지낸 골수 공산주의자였던 볼코고노프는 80년대 비밀문서를 통해 레닌이 국민에 대한 경고효과를 노려 무고한 농민 수백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부터 반공산주의자로 돌아섰다.그후 그는 스탈린.레닌등의 전 기를 발표했으며 한국전쟁.베트남전쟁 당시 미군포로의 생존여부를 추적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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