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대중문화키워드>7.끝.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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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아버지'가 달라져야 한다..권위적'인 아버지는 전통적인 위계질서의 상징이다.사회의 민주화,가정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런 전통적인 아버지의 자리는 변화를 요구받을 수밖에없다.변화를 두려워해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 는 것은 시계를 되돌리는 일 만큼이나 무모한 시도다.
올 한해.아버지'는 우리 사회의 중심주제였다.이는 곧바로 TV.소설.연극의 소재로 반영돼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그리고 중년가장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진한 공감대를 샀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여준 아버지는 변화의 흐름속에서 갈팡질팡하는.흔들리는 아버지'뿐이었다.그런 모습은.고개숙인 아버지'란 유행어를 낳았다.그러나 이제는 아버지의 고개를 다시 세울 방안을 우리 모두 함께 모색해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동정적인 분위기는 때마침 사회에 불어닥친 명예퇴직 바람과 맞물려 급속히 확산됐다.TV시청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한 후 퇴직금마저 사기당하고 정신병자가 돼버린 중년가장을 그린 SBS 창사특집극.가을소나타' 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김정현의.아버지'는 명예퇴직과는 무관하지만 역시 가족에 소외감을 느끼는 중년가장의 고독과 말없는 가족사랑을 그려 남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연극계에서도조명남의 모노드라마.중년남자에겐 미래가 없다'를 비롯,.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아름다운 거리'등이 오랜만에 중년가장들에게눈을 돌렸다.
이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동정론이다.지금의 40~50대가장들은 70년대의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역군들.그때는 사실 회사일에 전력투구할 것이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했다.그러나 지금은달라졌다.
이 시대의 가장들을 더욱 서글프게 하는 것은 정말 청춘과 피땀을 바친 직장에서 내몰리는 배신감이다.직장을 위해 가정을 희생했기 때문에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자니 설 자리가 없다.86년연극.위기의 여자'가 삶의 상실감에 방황하는 중 년여성을 부각시킨지 꼭 10년만에 아버지가.위기의 남자'라는 새로운 희생자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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