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맞는 망명설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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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파란의 한해 말미에서도 그는 여전히 떠돌이다.친구 사업장과 전광판 광고회사에 기웃거리며 일거리를 찾다가 얼마전 부산을 다녀왔다.한.러 무역의 한자락을 잡고 밥벌이 할 일이 있나 싶어서였다.“수산물쪽 수입 사업에 도울 일이 생길 것 같 은데 내년1월이나 돼봐야 확실한 결과가 나올 것”이란게 그의 말이다.그간 워낙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관계로 예전과 달리 장담을 삼가는 말투가 예사롭지 않다.결국 그는 자신의 전공으로 돌아가야할 뿐 달리 대안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첫 직장인 방송사에서도 러시아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제방송 일을 했고 사정이어려워진 최근까지 북한관련 정보분석이나 러시아어 학원강사 자리라도 없나 뒤집고 다녔을 정도다.
한 이삿짐센터에 1년 가까이 보관(엄밀히 말하면 방치)된 자신의 짐을 찾는 일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보관비를 대는 일도 그렇거니와 집이 없으니 둘 곳조차 없는 탓이다.친구집을 전전하다가 눈치가 보이면 간혹 처가에 들러 가족들과 만 나는 식의 생활을 당분간 계속해야 할 입장.내년 1월께 어머니로부터 소식이 날아들면 새로운 삶을 꾸릴 것도 계획중인데 예상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특히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법적 투쟁과정을 거쳐서라도 어머니를 찾아 제3국으로 출국하고야 말겠다”는 강경의사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소 누그러진 상태다.“이모 성혜림의 미확인 베이징(北京)체류 보도에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 ”는 그의 말에선 소위 성혜림 사건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올 여름과 가을 한국과 일본에서 발간됐던.자서전'은 그의호주머니 사정을 다소 펴지게 했다.하지만 그 돈은 사업파산의 후유증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도 일목요연하게 사용하지 못해 다시 거의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사건 이후 온통 그를 휘감고 있는 얘기는 바로 법원에서 횡령무죄판결이 떨어지던 당시의 재판장의 충고다.“자본주의 사회는 험난하다.피고는 현명하게 사시오.그리고 다시 일어서시오.”그런데 예전에도 그랬듯 그는 지금 보란듯한 재기는커 녕 불안정한 홀로서기조차 여의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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