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세로읽기>동시성의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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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화영교수의.바람을 담는 집'을 읽었다.“나는 가끔,단 한권의책도 없이 텅텅 비어 있는 정결한 방,절간 같은 방을 갖고싶다는 생각을 한다.어쩌다가 묵어가는 시골 여관방,주전자와 물그릇과 재떨이가 전부인 그런 금욕적인 방”을 상상하는 대목은 너무나도 아름답다.끝없이 무엇인가를 읽고,보면서도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라는 그의 충고는 시대착오적인 만큼이나 멋있다. 케이블TV가 생기면서 리모컨을 들고 쉴새 없이 채널을 바꾸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채널이 다섯개 이내일 때까지는 없던 증상이다.이때까지는 신문의 방송편성표를 펼쳐놓고 시청계획을 일목요연하게 짤 수 있었다.그런데 이제는 아니다.서른개 가 넘는 프로그램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나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내가보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더 나은 것을 찾아야겠다는 조급함이 자꾸 내 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든다. 허재.서장훈.이상민등의 성적을 외우던 호(好)시절은 지나갔다.일요일 아침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에어'조던의 덩크슛을 본다.섀킬 오닐이 얼마를 받고 LA레이커스로 갔는지,찰스 바클리의 리바운드가 평균 몇개인지,왜 마돈나가 데니스 로드맨의아기를 갖고싶어 하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런 현상은 학문 연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외국에 유학가 최신 흐름들을 접하고 귀국해 난 척하던 호 시절은 지나갔다.인터넷으로 들어가면 96년 12월에 발표된 논문들까지 고스란히 검색,읽어볼 수 있다.이제 지식은 시간의 격차를 두 고,단선적이면서 일방적으로 흘러내리지 않는다.분초를 다퉈 튀어오르고,부닥치고,싸우고,사라지는 시절이 됐다.인터넷으로 들어가 최근 논문몇편만 슬쩍 하면,컴퓨터를 모르는 노교수들도 감쪽같이 속일 수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온다.
이제는 정보를 보고 읽고 받아들이는.나'의 자기동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문제다.얼키설키 얽힌 최신 정보의 휴지통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리모컨을 두드리는.나'를 평가하고 반성할수 있는 또 다른.나'가 필요하다.그런데 그 두 가지 서로 다른.나'는 각각 나누어진 시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같은 공간에서 움직인다.
따라서 정보가 흘러다니는 속도와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그 받아들인 정보를 평가하고 반성하는 속도를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하지만 정보를 평가하는 나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나의 손가락이 더 빨리 움직이고,손가락의 움직임보다 방 송국에서 쏘아대는 전파가 더 빠른 것이 문제다.즉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쏟아지는 정보들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속도가 느껴지지 않는 삶.절간 같은 방,정보없는 방을 꿈꾸는 것은 자신의 몸이 전하는 속도감으로 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이다.종교에 귀의하고,인도나 히말라야를 찾아 떠나는 현대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동시성의 신화에 지쳐버린 순간들의 반대급부가 아닐까.그리고 이것은 동시성의 신화만큼이나 불가능한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닐까.
김탁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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