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아산 소녀가장 집단 성폭행-다시 가본 마을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기자가 찾아가 본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 평온했다.당시 성폭행 가해자로 낙인찍힌 14명의 주민들은 합의후 모두 돌아와 제자리를 찾았고 마을을 떠난 L양은 이들에게 단지.기억속의 소녀'로만 자리잡고 있었다.
당초 우려와 달리 파괴된 가정도,부모의 질책속에 주변을 겉돌고 있는 청년들도 없었다.한때.짐승들만 사는 마을'이란 오명속에 끝없이 추락했던 암울한 분위기는 현재 이들의 모습에선 전혀읽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기자의 방문이 마음속에 간신히 눌러둔.아픔'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비춰졌을 정도였다.그들이 한결같이“진실을 밝히는 것도 필요없고 다 잊었으니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게다.
하지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런.큰 일'이 어찌 쉽게잊혀질 수 있을까.말을 빙빙 돌리다가도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한이들의 고백은 걷잡을 수 없이 계속된다.“우리 마을이 짐승들만사는 곳이라고요? 이곳은 전통적으로 윤리를 숭상해 온 양반 고을입니다.향교문화도 발달해있고요”.이는 마을 주민들의 공통적인불만이다.
마을 목회자인 文종규(47)목사는“당시 과장된 일부 보도가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고 말한다.출향민들도 현 면장의 퇴진과 마을 윤리의 추락을 성토하는 각종 모임을 가졌다.L양이 다녔던 O초등학교에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임시 동창회가 열리기도 했다.실제로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지난 7월7일부터 시청과 면사무소 모든 전화는 마비상태였다.전국에서 항의전화가 잇따랐다.이는 이 고장 주민들을 더욱.고개숙이게'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사면초가의 입장에 놓인 마을 사람들이 선택했던 해법은 무엇이었을까.시간이 흘러 저절로 잊혀지길 기다리자는 의견과 PC통신등을 통해 왜곡된 부분은 적극적으로 알리자는 두가지 견해가 주류를 이뤘다.후자의 경우 가해자가 한 마을이 아닌 여러 고장 출신이고,게다가 자발적으로 오빠들을 따라다닌 L양에게 일부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런 여파에 마을내의 다른 결손가정 여중생을 예방차원에서라도.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어찌됐든 시간은 흘렀고 이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주민들도 가급적 이 문제를 대화에 올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마을은 예전으로 돌아간 상태다.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한 주민은“당시로선 불가피한 방어책이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의 행실을 비난하고 나섰던 것에 또 다른 아픔을 느꼈다”고 솔직히 말한다.그녀를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羅용하(45)씨도“우리도 할 말 많지만 결국은 결손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리 사회와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인다.
승자 없는 싸움.이 사건과 연루된 모두가 확고한 자신의 입장을 갖고 있기에 싸움이란 표현자체가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어떻게 된 일인지 모두가 피해자들 뿐이기 때문이다.학교도,마을도,그리고 아픔을 딛고 힘찬 비상을 하리라 기원했던 L양까지 말이다. <강주안.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