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결산 분주한 세계 學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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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해 세계학계의 특징은 20세기를 평가.비판.전망하는 작업이활발했다는 점이다.
배경은 이렇다.우선 40년대 이후의 냉전이 해소됨으로써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대립구도에서 세계를 전망하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또 인종.민족.환경문제등의 위기화 현상과 함께 16세기 이후 근대문명 자체가 반성의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전자시대의 맹목적 낙관을 피력한 미래학자들과 달리 세기말이란 기점을 계기로 20세기 결산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학자 들은 주로 역사학.사회학자들이다.
.20세기 결산'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1955년刊)를 쓴 영국의 사회경제학자 에릭 홉스봄이다.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에 이어 32년만에 완간한.극단의 시대'는 제1차세계대전부터 공산권붕괴까지를 다루고 있다.그는 깊은 분석을 통해 현재지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자본주 의가 최선의 체제인가를 심각하게 탐색한다.
비슷한 시기에 복지국가.이데올로기론에 뛰어난 사회학자인 괴란테르번도.유럽의 현대성과 그것을 넘어서(European Modernity and Beyond)'라는 저작을 냈다.45년이후동유럽까지 포함한 유럽의 궤적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현대성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탐색하고 있다.이외에도 20세기가 자본주의-사회주의 체제간의 대립이 아니라 사실상 자본주의 세계체제일 뿐이라는 세계체제론의 관점에서 20세기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조반니 아지리의. 긴 20세기(The longtwentieth Century)'도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
세계학계에서 20세기를 결산하며 가장 많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은 미국 사회학자 이마누엘 월러스타인의.자유주의 이후(After Liberalis)'와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 Left and Right)'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대안의 부재가 가져온 세계역사의 불투명성을 통해 유럽 지식인들의 이론적 고민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것으로 평가받는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한울 譯刊 예정)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 고삐풀린 시장의 힘을 경계한다.일부에서 시장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또 사회주의가 붕괴한 마당에 전통적인 좌.우의 대립은 무의미하게 됐다며 기존의.해방의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여성.환경.
인종등의 해결을 위한.삶의 정치'를 제안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가장 최근에 출간돼 국내에도 번역,소개된.자유주 의 이후'(당대刊)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결 속에서 존립할 수 있었던 자유주의가 사회주의 붕괴로 소멸하게 됐다고 분석하고 여성.환경등 세계적 수준의 다원적 운동을 통한 세계체제의 극복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물론 현재의 자본주의체제 또한 더이상 대안적 체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이다.따라서 20세기의 평가.비판.전망은 20세기에 국한되기보다 근대 전체에 대한 반성적 탐색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시기 적으로 세계학계의 20세기 결산작업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며 그만큼 국내학계에서도 이같은 주제가 큰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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