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원화가치 急落 내버려둬야 하나-정부개입 불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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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들어 환율이 급등하고 있어 환율당국을 비롯해 달러외채를 지고 있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그리고 수입업자들도 앞으로 원화가 얼마나 더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95년 12월말 원화환율은 7백74원20전이었으나 지난19일 현재 8백43원70전이 됨으로써 그동안 원화가 9%정도 떨어졌다. 우리나라 외채가 96년 12월말 1천억달러를 넘어서는데 그렇게 되면 연간 외채이자가 60억달러 이상이 될 것이고 원화가치 하락에 따라 원화외채부담이 부쩍 늘어나게 된다.이것은 곧외자를 쓰고 있는 민간기업의 자금압박을 가중시키며 그동안 차관자금을 들여온 금융기관과 공기업은 자금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됨을 뜻한다.
이에 경제일각에서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환율급등 기세를 꺾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환율개입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우선우리나라 환율제도와 여건 속에서 정부의 환율개입 이 용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의 환율개입은 외환시장을 왜곡시키고 외화자금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행 환율제도는 세계변동환율체계에 부합하는 시장평균환율제도로서 환율이 일일 단위로 변동한다.이 제도에 따르면 어제 은행간 달러 거래에 적용된 환율을 가중평균하여 이것을 오늘거래의 매매기준으로 정한다.다만 하루 환율변동은 기준율의 상하2.5% 범위내로 제한하고 있다.
은행간 달러거래는 금융결제원의 외환거래 중개실에 설치된 온라인망을 통해 이루어진다.달러 자금이 부족한 은행은 중개실에 달러매입주문을 내고 달러 여유가 있는 은행은 달러매도주문을 내는데 중개실에서는 매입주문의 조건과 매도주문의 조건 이 가장 많이 부합하는 거래부터 성사시켜 나간다.그동안 하루 달러거래 물량은 10억~20억달러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달러상승 기대 때문에 달러 가수요까지 겹쳐 원화절하가 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대(對)달러 원화시세가 급락하고 있는 것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예상밖의 과다한 경상적자로 인한 달러수요의 강화에도 기인하지만 국제외환시장에서 이미 달러화가 주요통화에 대해 강세를띠고 있기 때문이다.국내외 환율제도가 과거 고정 환율제도에서 변동환율제도로 바뀐 후부터 환율은 주로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가 환율을 국제수지 불균형 시정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사용하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달러를 풀어 달러화 상승기세를 꺾으려 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시장기능에 장애요인이 발생해 가격이 진실된 수급상황을 나타낼수 없는 경우에 한해 실행되는 정부개입만이 정당성을 가진다.만일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 임의로 개입해 환율을 시장 균형수준에서 멀리 떨어지게 유지하고자 한다면 외환시장은 계속 불균형 상태에 있게 되며 귀중한 외화자금이 잘못 사용되게 된다.외환당국과 무역관련기업은 요즘의 일시적인 환율급등 현상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앞으로 경상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한 비(非)환율정책을 써야 한다.그리고 고정환율시대에 환율이 정책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는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金仁哲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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