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필링>소극장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추운 겨울날 충무로 한복판에서 악어 한마리가 죽어가고 있다.무방비 상태로 꼼짝도 못하고 허연 뱃가죽을 드러낸채 눈물을 흘리며 거의 마지막 숨을 들이쉰다.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도 구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 슬프다.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악어'는 수많은 단점을 안은 영화다.너무 진부한 이야기 구조와 거의 풀려버릴 듯한 인과관계,마치 촬영하다 필름값이 없어 중단된 듯한 에피소드들.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영화에는 보석같은 감성이 있다.그래서 우리시 대를 단숨에 동물농장으로 만들어버리는,소름끼칠 정도로 오싹한 불쾌감이 넘쳐난다. 한강에 사는 악어는 강물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을 악랄하게 갈취하며 살아간다.그러나 그 악어가 도시의 정글속으로들어가면 더 비열하고 간교하며 무리지어 폭력으로 다른 동물들을괴롭히는 피비린내 자욱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악어는 잔인하지만 정글속의 동물들은 더욱 잔인하다.악어는 더러운 한강물속에서만 행복하다.
이 이상한 데뷔작은 마땅히 주목받아야 한다.그러나.악어'는 1년의 마지막 달에 쓸쓸하게.한국영화 상영일수'를 맞추기 위해아무런 광고도 없이 돌아가고 있다.영화관 매표소에는 공짜 티켓을 가져온 아줌마들이 드문드문 표를 끊는다.지금 이 땅의 얼터너티브(!) 영화들은 이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그것을 그저 운명이라고 할 참인가? 이 모든 운명은 이 땅의 영화관들이 그저 한가지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커다란 영화관이건 작은 영화관이건 모두들 줄을 잘 서 여름에는 스필버그 영화를 기다리고 겨울에는 한국영화 스크린 쿼터일수를 메우기에 급급하다.그러다 보니 이 모든 영화관들은 마치 먹이사슬처럼 얽혀있고,유통구조는 독과점 암시장이 돼간다.
다소 낭만적으로 이야기해보자.왜 영화감독에 대해서는 작가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영화관의 작가주의를 말하면 안되는가? 대형극장과 복합영화관과 소극장은 그저 규모의 경제학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만일 그렇게 구조화된다면 소 극장들은 언제까지나 대형극장의.날개'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소극장들은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서로연대하고 자기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형극장들이 규모의 경제에 눌려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대안(얼터너티브!)영화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속에서 자기의 작가주의를 선언해야 한다.
소극장들이 더이상 날개가 아니며,몇몇 영화들로부터 해방구임을선언해 자기의 방식으로 살아남을때 비로소 여기 영화.문화'가 살아 있다고 말할 것이다.그 거대한 공룡들은 멸종했다는 사실을기억할 것.
소극장들은 정말로 이 영화의 변경 늪지대속에서 악어처럼 살아남아야 한다.그래서 김기덕 감독의.악어'같은 야심찬 데뷔작을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따분한 등급외극장 논쟁따위를 할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 소극장문화에 대 한 논쟁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시급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평론가〉정성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