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일보(人民日報) 자매지 경화시보(京華時報)는 3일 광서제의 유해와 두발 성분 검사를 통해 체내에서 g당 2404㎍(마이크로그램:100만 분의 1g)의 비소 성분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비소는 궁중에서 독살에 주로 사용됐던 비상(砒霜)의 주성분이다.
이에 따라 청사(淸史)편찬위원회 주도로 2003년부터 5년간 광서제 사인 규명 작업을 진행해온 중국중앙방송(CC-TV), 청 서릉(西陵) 문물관리처, 원자력과학연구원, 베이징(北京)시 공안국 법의학 감정센터 등 합동조사단은 사인을 독살로 결론 내렸다.
조사단은 “광서제와 생활 환경이 유사했던 부인 융유(隆裕) 황후의 유해에서 정상인(0.59㎍)보다 약간 높은 9.2㎍의 비소만 검출됐으나 광서제의 모발과 위에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비소가 남아 있어 독살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광서제의 이모인 서태후(西太后)는 아들 동치제(同治帝)가 천연두로 요절하자 1875년 여동생의 네 살배기 아들을 청나라 11대 황제로 앉히고 실권을 휘둘렀다. 광서제는 33년간 재위하면서 기울어져 가는 청 황실을 살리기 위해 1898년 개혁파 캉유웨이(康有爲)가 주도한 변법자강운동을 지원했으나 서태후의 미움을 받아 장기간 연금 생활을 한 비운의 황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