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으며 웃어달라 하자 “경제가 좋아져야 진짜 웃지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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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06면

열차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작정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울역에 가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일 것이다. 지난달 24일 오전에 시작된 인터뷰는 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설문과 함께 사진촬영까지 요청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합실에서 만난 사람들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치는 사람, 획 돌아앉는 사람, 외면하며 가던 길을 가는 사람…. 취재진은 인터뷰 초반에 크게 고전했다. 2시간 동안 계속 퇴짜만 맞자 관상이라도 배우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진도가 나가기 시작한 것은 의자 위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을 한 명씩 천천히 설득하는 쪽으로 작전을 바꾼 후부터다. 이틀 동안 취재진은 6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났다. 젊은층과 남성의 응답률은 괜찮았다. 반면 30~40대 여성의 응답은 최악이었다. 설문에는 응했으나 사진 촬영을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첫날의 성적이 나빠서 둘째 날에는 여성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인터뷰 성공률은 대략 예닐곱에 한 명꼴이었다. 야구의 타율로 치면 2할에 못 미친 셈이다. ‘세수를 안 해서’ ‘경제를 잘 몰라서’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등 거절의 이유는 많았지만 대부분 낯선 사람과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어 보였다. 마치 물어봐 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경제사정이 나아지길 하소연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기자에게 거꾸로 설문지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선 고등학생이었다.

“우린 원래 힘들었어요.”

역사 안에서 만난 퀵서비스 배달원은 평소에도 늘 생활비를 걱정하며 사는 터라 경제위기가 와도 특별히 더 불안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 60대 여성은 기자가 사진 촬영 도중 웃어달라고 부탁하자 “경제가 좋아져야 진짜 웃을 텐데…”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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