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데뷔10년만에 대상경주 첫우승 김택수 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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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밥을 굶고 허기진채 훈련하는 남자.흔히 생각하듯 체중조절에 신경쓰는 권투선수나 체조인이 아니다.모델도 아니다.말잔등에 올라 찰나를 다투며 경쟁하는 경마기수다.
레이스마다 1백분의1초 차이로 수십억원의 베팅액이 왔다갔다하는 경마세계에서 기수의 체중은 적을수록 유리하다.1백이라도 가벼운 상태에서 말이 전속력으로 질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기수가 무거울수록 말발굽은 느려진다.이에따라 선천적으 로 키가 작은이들이 환영받는 것이다.
지난 10일.SBS배 대상경주'에서 생애 첫 주요대회 우승의꿈을 이룬 김택수(31)는 감량에 따른 극한상황의 모델 케이스로 꼽힌다.데뷔당시 148㎝이던 키가 165㎝로 커졌으나 체중은 여전히 53㎏을 유지하고 있다.75명의 기수 중 5번째 장신으로 경주 전날 사우나.러닝으로 땀을 뺀뒤 야채로 식사를 때우고 레이스 당일엔 아예 굶은채 말을 탄다.술은 멀리하나 담배는 하루 반갑 정도.
83년 부천고를 졸업한 그는 고향인 전남구례서 농사를 짓다 농협에 빚만 진뒤 상경,신문배달을 하던중 광고를 보고 경마와 인연을 맺게 됐다.83년 마필관리원 근무를 거친뒤 86년 기수로 변신,지난 3월 10년만에 2백승을 달성했다.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잔뜩 웅크렸다 펴는.멍키자세'를 하루1천회 반복해 근육을 풀고 새벽 조교때 6~7마리를 갈아타는 강훈련을 거듭한다.이 모두가 체중조절을 위한 것으로“남들은 실컷 먹고 타는데 나만 굶고 지낸다”는 푸념이 입 버릇이 됐다.
연간 순수입은 3천5백만원 가량으로 상위권이나 직업병도 함께얻었다.레이스때마다 굵은 모래덩어리가 보호안경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2.0이던 양쪽 시력이 0.6으로 처졌다.또 불규칙한 식사로 만성위장병을.덤'으로 추가했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굶주림보다 각종 부상위험.88년 겨울 훈련도중 낙마했으나 왼쪽발이 등자에서 빠지지 않아 말 뒷발에 차이며 1백이상 끌려가는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으로 한달이상 고생했다.올 추석 전날엔 신마를 길들이다 뒷발 굽에 왼쪽 눈을 차여 실명할 뻔하기도 했다.이밖에 레이스에서 전력 질주하고 난뒤“너 때문에 거금을 잃었다”고 욕설을 퍼붓는 팬들을 보면 직업에 회의가 든다고.
적극적인 성격 탓에 단거리경주와 초반부터 치고나가는 선행마를좋아한다.“1위로 골인하는 순간 모든 고달픔을 잊어버린다”며 매일 오전4시부터 찬공기를 가르며 훈련에 몰입한다.2천3백여마리의 경주마를 거쳤으며 반칙주행에 따른 기승정지 처분도 30회이상 당한 그는 은퇴후 조교사가 되는 것이 꿈.부인 한광호(29)씨와 두 아들의 얼굴을 그리며.근성의 자키'김택수는 오늘도과천경주로를 질주한다.

<봉화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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