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有感>'소리의 유희' 스텀프 공연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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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19일 호암아트홀에서 막이 오른.스텀프'공연은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주류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는 현 시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적절한 작품이다.
6년전 영국에서 시작돼 짧은 기간에 온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관객들을 놀라게 한.스텀프'는 객석을 완전히 무장해제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몇 개의 커다란 드럼통과 무대 뒤편을 가득 메운채 주렁주렁 달려 있는 온갖 잡동사니,여기저기 널려있는 철제 쓰레기통과 조명기기,마치 창고를 개조한 듯한 록카페 분위기 속에서 시작을 알리는 어떤 암시도 없이 슬그머니 공연은 찾아온다 .
솔빗자루가 움직이며 내는 슥슥거리는 소리에 이어 한 명의 청소부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했더니 어느덧 무대는 솔빗자루와 함께쿵쿵거리며(스텀프)돌아다니는 16개의 손과 발,이들로부터 흘러나와 쌓인 소리와 리듬으로 가득찬다.
마치 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 음악에서처럼 눈에 띄지 않게,그러면서도 조직적으로 변해가는 이들의 움직임과 리듬에서 우리는 유쾌한 음악을 감상한다기보다 인간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펼칠 수 있는 공동체적.원초적 놀이'(이 복잡한 세 상에서 이제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음악가이자 배우인 8명의 연기자들은 곧이어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성냥갑.비닐봉지.플라스틱컵.라이터.고무호스등이건 간에)을 이.원초적 놀이'의 도구로 변모시키는 마술을 펼친다.혼자서도 좋지만 여럿이면 더욱 즐거운 모습이다.
휴식없이 90분간 계속되는 이.소리의 유희'는 치밀하게 설계된.시간예술'로서의 구조와 연기,연주의 완벽성,그리고 세심한 배려속에서 드러나지 않게 작동하는 음향장치와 조명이 기꺼운 박수와 동조의 웃음을 증폭시켜 나갔다.그러나.스텀프 '공연의 진짜 매력은 다른데 있다.
즐거우면서도 저속하지 않게,창조적이면서도 부자연스럽지 않게,자유로우면서도 어느 누구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공연물이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것이야말로.스텀프'가 우리에게준 최고의 선물이다.동시에 이러한 것들이 순도 가 떨어지는 예술가로부터는 절대로 나올 수 없다는 교훈도 우리에게 전해준다.
유쾌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 공연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나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공연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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