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시시각각

분열의 정치, 통합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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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부분의 국민은 정치를 그저 구경거리나 유희로 받아들인다. 이런 시합에서 정치인들은 배불뚝이 검투사로 등장한다. 우리는 얼굴에 붉은색이나 푸른색을 칠한 뒤 우리 편에 응원을 보내고 상대편에 야유를 퍼붓는다. 그러다 우리 편이 비열한 플레이로 상대편을 꺾어도 우리는 환호한다. 중요한 것은 승리이기 때문이다.”(버락 오바마, 『담대한 희망』 중에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오바마 상원의원은 미 정치와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한다. 당파성과 교조적 이념의 노예가 되어 서로 상대편을 물어뜯기 바쁘다는 것이다. 국가가 당면한 난제에 관한 어려운 결정을 회피한 채 정쟁(政爭)에만 몰두하다 보니 국민의 눈에 정치는 사명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일 뿐이고, 정계에서 벌이는 논란은 쇼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예측대로 다음 달 4일 오바마가 승리한다면 이는 정치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가치와 이념의 대립 속에 극단으로 치닫는 ‘분열의 정치’를 공통 기반(common ground)과 상식(common sense)에 기초한 ‘통합의 정치’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선거운동을 통해 보여준 결과라고 믿는다.

캠페인 과정에서 그는 네거티브 전략을 최대한 자제했다. 자신에 대한 비방과 흠집내기로 분열과 대립을 부추기는 상대 진영의 선거전략에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와 압력을 단호히 거부했다. 당파성과 이념성을 강화하고, 과장과 단순화를 통해 허풍을 떠는 선거전략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감성보다 이성, 이념보다 상식, 열정보다 냉정을 택했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적인 침착성을 보여줬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말, 즉 “네게 그렇게 하면 넌 기분이 어떨 것 같니?”란 질문을 정치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최고경영자가 종업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건강보험 지원비를 삭감하면서 수백만 달러의 상여금을 챙기기는 어려울 것이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용자의 압박감을 노조 지도자들이 외면하진 못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의 시각에서 국제 상황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타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며, 상대방에게도 귀담아들을 만한 주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그런 정치가 그가 꿈꾸는 성숙한 정치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선거전략으로 승리했더라도 일단 집권하고 나면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펴는 것이 정도(正道)지만 부시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선과 악의 대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세계관은 나는 항상 옳고, 상대편은 잘못됐다는 독선과 아집을 낳았고, 감세와 규제 완화는 무조건 선이고, 증세와 규제는 무조건 악이라는 교조적 신념으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심화시켰다. 이에 대한 야당의 반발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국민에게 비쳤다. 이런 정치 현실에 진저리를 친 미 국민은 보수의 언어로 진보를 말하고, 진보의 목소리로 보수를 감싸는 오바마에게서 변화의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를 맞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통합과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감동이 없다. 말로는 국민을 섬기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면서 그동안 그가 실제로 해온 것은 집토끼와 산토끼를 가르는 분열의 정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말에 믿음이 가질 않고, 울림이 없는 것이다. 30% 선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지지율은 그가 통합의 정치에 실패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설사 오바마가 패배하더라도 미국 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일깨워준 것만으로도 오바마는 이미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이명박 정부는 부시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