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駐美대사관에 대변인 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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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미 관계가 심상치 않을 때면 주 워싱턴 한국대사관은 침묵한다.북.미간에 의미있는 얘기가 오갈 때도 우리 외교관들은 여지없이 입을 다문다.한국 특파원들뿐 아니라 현지 외국 언론들이우리 정부의 입장을 알고 싶어할 때도 대사관은 인색하다.사태의배경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의 입장조차 전해듣기 어렵다.
우리 공관(公館)의 이같은 태도가 야속하고 안타깝다.말 한마디 실수로 출세에 종지부 찍은 동료들을 익히 보아온 관리들의 몸사림을 이해못하는 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관계가 역동적으로 변하고 북.미 관계 또한얘깃거리가 많아지는 마당에 앞뒤 분간 못한채 .작문(作文)'하는 현지 특파원들의 구태(舊態)를 정부가 나몰라라 해서는 안된다.꼬여가는 한.미.북한간 삼각관계에 대해 미국 내 여론 지도층과 언론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그리고 이들의 정당한 호기심을 부분적이나마 충족시켜줄 의무는 현지 대사관에 있다.
서울에 외국 주요 언론사 특파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브리핑이 없기는 매 한가지다.한국 정부의 입장을 물어올 때 .같은 목소리'로 답해줄 창구가 서울에도 있어야 하고 워싱턴에도 있어야 한다.
정부가 힘주어 추진하는 .세계화'는 외국에 비친 우리 모습에까지 신경쓸 때 가능하다.그리고 우리의 실상이 외국에 균형되게비춰지는 것은 상당부분 정부의 노력에 달렸다.지난 여름 주 워싱턴 중국대사관의 공보관이 자국(自國)과학기술협 력단 방미(訪美)를 앞두고 미국 언론을 위한 브리핑을 가져 화제가 된 적이있다.참석자들은 중국이 비로소.미국 움직이는 법'을 터득했다고반가워했다.
우리의 이해(利害)가 얽힌 문제들이 워싱턴에서 속출하고 있다.근거없는 루머를 사전에 차단하고 한국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대사관에 대변인을 두는 방안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큰 일 있을 때 사람들을 불러모아도 좋고 문의에 성실히 응하기만 해도 무방하다.다만 서로 미루지 말고 대사관의 입이 돼줄사람이 필요한 것이다.세계정치 1번지인 미국의 수도(首都)에 정부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입'이■없다면 대미 (對美)외교의정당한 몫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사관이 상대할 이들은 미 정부관리와 의회만이 아니다.현지 언론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고 한국 특파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도 의미있다.좁아진 세계에 결국 우리 국민들의 생각을 움직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부터라도 공관에 대변인을 두는 방안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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