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 뺑소니’ 용서 어렵지만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택시기사 박모(64)씨는 지난해 6월 대구 대명동의 한 네거리에서 사고를 냈다. 우회전을 하자마자 횡단보도가 있었는데 보행신호가 켜진 것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박씨는 길을 건너던 김모(42)씨를 들이받아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히고 도주한 혐의(특가법상 도주차량)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해 박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도주 혐의가 인정돼 운전면허가 취소됐고 벌금형 이상이 선고돼 향후 4년간 운전면허를 딸 수 없게 된 것이다. 평생 택시운전을 해왔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박씨에겐 다소 가혹한 처벌이었다.

박씨가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는 것이었다. 이 경우 운전면허는 취소되지만 판결 뒤 바로 재응시할 수 있다. 하지만 박씨는 1976년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대구지법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형법 59조 1항은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자’를 선고 유예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법 조항과 판례에도 불구하고 대구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 오세율)는 박씨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 김씨가 사고 당시 다쳤다고 말한 사실이 없어 바로 자리를 떴으며 상해도 그다지 중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무려 32년이 지난 청년 시절의 전과로 인해 박씨가 유죄 선고를 받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밝혔다.

  박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