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용돈연금’이 돼서는 곤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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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자의 보험료 산정 때 적용하는 월소득 상·하한액의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 소득하한액을 현행의 22만원에서 2013년까지 단계적으로 37만원으로 인상하고, 소득상한액도 현행의 360만원에서 매년 20만원씩 인상하여 2013년 460만원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월소득 상·하한액을 인상하는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하다. 1995년에는 월소득 360만원을 초과한 가입자가 0.9%에 불과했지만 현재 12.6%(164만8000명)에 달하며, 하한소득이 적용되는 가입자가 0.1%에 불과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보험료 증가에 대한 가입자 반발을 우려하여 인상을 미루어온 결과 소득이 상승하는 현실을 보험료 및 연금액 산정에 반영할 수 없었다.

더욱이 2007년 재정 안정화 목적으로 급여를 40년 가입 평균소득자 기준으로 60%에서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로 삭감하면서 국민연금이 소위 ‘용돈연금’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국민연금제도 개선 방안으로 다음을 제안한다. 우선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적정 급여-적정 부담 체계로 전환하고 재정 부담을 인구 구조가 악화되는 미래로 떠넘기지 말고 세대별로 분산시켜야 한다. 2007년의 법 개정으로 기금 고갈 시점이 2047년에서 2060년으로 늦춰졌지만 평균소득의 신규 가입자가 본인이 납부하는 보험료의 1.7배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기대할 수 있어 장래에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취업 기간의 소득과 비교하여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여야 한다. 연금의 적정성 문제는 2007년 법 개정에 따른 급여 수준의 삭감, 저소득층으로의 소득재분배, 낮은 수준의 소득상한액 설정 등으로 특히 고소득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월소득이 600만원인 가입자에게 보험료와 연금액 산정에 360만원만 적용되어 용돈연금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적정 수준의 연금을 위하여 소득증가가 자동적으로 보험료 및 연금액 산정에 반영되도록 소득상한액을 월평균 소득액의 3배(이는 현재 500만원 수준)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필요한 노후소득이 보장되도록 정부가 개인연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가입자 간의 형평성도 재고하여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 고소득 자영자가 소득을 하향 신고할수록 많은 순연금액(총연금액-총보험료)을 기대할 수 있어 형평성을 왜곡하고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지역가입자로 소득을 신고한 사람의 평균소득이 직장가입자의 60% 수준에 불과, 유리알 지갑의 직장가입자와 소득이 투명하지 못한 자영자 간에 실제소득과 신고소득 간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파악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직장가입자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앞으로 도래할 고령사회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경제활동인구가 부족한 고령사회를 극복하려면 장기간 취업하도록 다양한 취업유인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간 취업하여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에게 일정 수준의 연금을 지급하는 최저보증연금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특히 저소득 가입자의 장기취업과 소득신고에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입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주식 가격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공단이 정치권 압력으로 증시 지지를 위해 주식을 대규모로 매입한다는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40년 후의 재정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큰 폭의 급여삭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의 입장에서 필자는 이러한 우려가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금의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것은 장기 재정 안정화에 기여하므로 가격이 저점이라고 판단되면 위험을 적절히 분산시키면서 과감히 주식을 매입할 필요가 있다. 매입에 대한 최종 결정을 정치권 아닌 독립이 보장된 기금운용 담당자가 하면서 말이다.

김상호 관동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