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야한 글짓기는 유죄인가 춤추는'칼날'-두얼굴의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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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미셸 푸코의 이론 속에서만 보던 권력의 실체를 피부로 체감했다.』 92년 『즐거운 사라』를 냈다 외설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마광수 전연세대교수는 출감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4년만인 지난달 그는 신작소설 『불안』을 내놓았다.계간 문화평론지 『리뷰』에 연재했던 이 소설은 또 외설시비를불러일으키지 않나 해서 출간과 함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는 한낱 기우였다.마씨는 『불안』에서도 여전히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성적 표현의 정도나 발언의강도는 한결 수그러들었다.한 평론가가 우스갯소리로 『마교수 참착해졌더라』고 논평할 정도다.마씨 스스로도 『 「즐거운 사라」로 마녀사냥을 당한후 처음 쓰는 소설이라 무척 힘들었다』며 자기검열에 시달렸음을 고백하고 있다.마씨에게 진정한 비극은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 자체보다 자신이 수긍하지 못한 검열의 논리가자신도 모르는새 몸에 스며버린 것 일게다.
이제 또 한명의 마씨와 같은 비극적 인물이 탄생할지도 모르는어두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그 주인공은 장정일이다.94년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 이어 지난달 출간된 그의 신작 『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刊)는 출간되자마자 외 설시비를 견디다 못한 출판사가 자진회수 결정을 내림으로써 제대로 평가도 못받아보고 묻혔다.이 여파로 민음사에서 출판예정이던 장씨의 희곡집 『해바라기』도 출판이 취소됐다.간행물윤리위원회는 지난달 31일 회의를 열고 문화체육부에 『내게 …』의 제재를 건의했고 검찰에서는 장씨의 사법처리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게…』는 38세 조각가와 18세 여고생의 갖은 변태적 성애 묘사가 전체 작품의 80%정도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즐거운사라』보다 성묘사의 정도가 더 노골적이다.
90년 첫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 이후부터 『너에게 나를 보낸다』『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 이르기까지 장씨는 일관되게 성에 몰두해왔으며 『내게…』는 장씨의 작품중에도 가장 성묘사가대담하다.92년 『즐거운 사라』 사건에서 봤듯 우리사회에서 성을 파고드는데는 그만한 위험부담이 있는걸 뻔히 알텐데도 장씨는왜 그토록 성에 집착하는 걸까.
파리의 자기방에 틀어박혀 책읽기와 글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장씨는 여기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우선 포르노에 대해.『이 소설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예술가 소설」과 현대의 묵시록이 포개진 것으로 생각하고 썼습니다.주인공 J는 대령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혹독하게 자라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성장한 인물입니다.그가 예술을 하게 된 것도 아버지의 법칙에 반항하기 위해서지요.그러나 자신이 빚어놓은 조각품이사실은 한치도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 하고 오히려 아버지에게 고해하는 양식이란걸 깨닫게 되지요.그래서 나중엔 아무 것도 안하고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려 합니다.포르노는 자궁속으로의 퇴행욕망과 폭력으로 대변되는 아버지의 법칙이 충돌하는 이런 인물을 그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양식입니다.』 장씨는 소설속에서 J를 『그는 자기 속에 파시스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나이가 들어가면서 그토록 미워했던 신버지(신격화된 아버지)와 점점 닮아가며 거기에 투항하는 일그러진 자기 모습을 본다』고 묘사한다.
평론가 방민호(32)씨는 이런 J의 모습에서 장씨를 발견하고『J의 자기모멸은 정확히 작품 바깥에 있는 장정일 자신의 자기모멸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아버지라는 말로 표상하는 것들,즉 절대자나 신,심지어 공동체를 위한 변혁운동 까지 장씨가 모독하고 싶어했던 것들이 사실은 악마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씨는 이 회의에서 오는 공포때문에 장씨가 포르노 속으로 도주했다고 주장한다.장씨는 여기에 대해 『소설과 작가 개인을 너무 동일시하는 것같다.어릴 때 시 쓰고 소설 쓰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꿈이 아버지라는 적을 만들었는데,지금 생 각하면 그리악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씨의 소설 곳곳에는 J의 예술가로서의 회의가 자신의 실제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암시된다.그러나 포르노속에 들어간 J는 장씨가 이 소설을 묵시록으로 만들기 위해 들여보낸 인물이다.즉 지금까지 장씨가 이전 소설에 등장시켜온 밀실고립형 현대인을 극단까지 밀어붙였을 때의 모습이 J다.장씨는자신의 이전 소설들을 이런 방식으로 회의하며 거기에서 현대의 묵시록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 소설을 자신을 향한 예술가 소설로 자리매김한다.그래서 『내게…』 는 고백록적 예술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온 묵시록이라 할 수 있다.
장씨의 소설을 지켜봐온 평론가들은 『내게…』가 장씨에게 어떤전환점이 되는 작품으로 문학적 의의가 있다고 평한다.그러나 장씨가 의도적으로 초사실적으로 담아낸 성묘사 부분이 독자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주면서 이 소설의 속내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고있다.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강력한 반발까지 사고 있다.장씨는이에 대해 『이 소설은 물론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다』면서 『그러나 진정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성묘사가 아니라 무위도식하며 사는 인생을 선동하고 있는 J라는인물의 등장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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