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하나마나한 '血稅'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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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국회에서는 예산결산 심의가 한창이다.국민의 혈세(血稅)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썼는지,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보면 어처구니가 없다.95년도 정부 예산결산안 심사를 다룬 7일의 예결위회의장.여야는 이날 일반회계.
특별회계.기금등 지난해 정부가 사용한 1백10조원의 집행명세를통과시켰다.
심정구(沈晶求)예결위원장은 『여야합의가 있었다』며 찬반토론을생략한채 장관 10명의 답변을 서면으로 하게 했다.그뒤 곧바로『이의 없느냐』고 묻고 『이의 없다』는 대답이 나오자 방망이를내리쳐 통과시켰다.
국회가 정부의 95년도 예산집행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그러나 과연 그럴까.행정부는 과연 지난해 국민세금을 제대로,꼭 써야하는 곳에 효율적으로 썼을까.복잡한 수치를 나열할 필요도 없다.국민들은 공사를 하다말아 무한정 방치하고,멀 쩡한 보도블록을 파헤쳤다 덮었다를 반복하는등 도대체 알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반복되는 것을 늘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 대표라는 의원들은 『이의 없다』고 한다.야당의 태도는 더 이해할 수 없다.야당은 해마다 예산을 정치이슈와연계해 통과시키네,마네 하며 실랑이를 벌여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예산배정 못지않게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썼느냐를 따지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그런데도 예산안만 물고 늘어지고 결산안은 뒷전이다.
야당의원들은 『이미 써버린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다.의원들의 사고방식이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는 『왜 예산을 낭비했느냐』는 호통과 『의원님 지적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잘하겠다』는 하나마나,들으나마나한 얘기만 해마다 되풀이된다.
21세기는 무한경쟁 시대라고 한다.민간부문뿐 아니라 정부의 경쟁력도 시험받는 시대다.하지만 국회와 행정부가 이처럼 짝짜꿍으로 『열심히 하겠다』『이의 없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는한 국가경쟁력 확보는 「산에 가서 고기찾는」격일 뿐이다 .
김종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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