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부도, 실직 … 홍콩도‘시련의 계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제 금융위기가 홍콩에도 밀려왔다. 부도 회사가 줄을 잇는가 하면 부동산과 고가품·경매시장까지 꽁꽁 얼어붙고 있다. 홍콩 기업들은 올해 임금인상은 생각도 못할 일이라며 아우성이다.

21일 오후 홍콩 정부 노동복지국 앞에서는 40여 명의 실업자가 밀린 월급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최근 금융위기로 파산한 한 홍콩 의류업체 택 팻 그룹 직원들이다. 회사는 유동성 위기로 부도를 내고 파산한 뒤 직원들의 월급을 주지 않고 있다. 10여 일 새 이 같은 파산업체 근로자들의 시위는 10여 건이 넘는다. 홍콩 기업이 투자한 중국의 세계 최대 완구업체인 스마트유이언(合俊)을 비롯해 선전(深)의 홍콩 전기용품 제조업체인 BEP 인터내셔널 등 20여 업체가 한 달 새 문을 닫았다.

중국 최대 투자회사인 중국국제투자신탁(中信그룹·CITIC)의 홍콩지사인 퍼시픽시틱 주가는 21일 55%가 폭락했다. 전날 외국환 투자 실패로 155억 홍콩달러(약 2조7200억원) 손실을 입었다는 실적 발표 때문이었다. 대규모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래리 융 등 2명의 최고경영자가 사퇴했지만 충격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 회사는 상반기에만 43억8000만 홍콩달러 흑자를 내 국제 금융위기에도 가장 건실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외환투자 실패로 22일 현재 시가총액이 손실액인 155억 홍콩달러에도 못 미치는 143억 홍콩달러를 기록해 파산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기업들도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홍콩인재관리협회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업원 300명 이하 중소기업 50%가 올해 임금 동결이나 삭감을 계획하고 있다. 1000명 이상 종업원을 거느린 중견 및 대기업도 27.3%가 임금 인상을 못한다고 답했다. 전체 기업으로는 40%가 임금 인상이 어렵다고 답했다. 아시아 최고 고가품 판매시장도 찬바람이다. 홍콩 자동차 판매업계에 따르면 고급자동차 판매는 9월 10%가 줄었고 10월 들어서는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홍콩에서 10년 동안 고급차 딜러를 한 켄(37)은 10월 들어 구매예약자의 40%가 계약을 취소했고 이달 말까지 아예 예약건수가 없을 수도 있다고 고백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