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三農.三學.三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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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부터 농사꾼을 세 부류로 구분해 하농(下農).중농(中農).
상농(上農)이 있다고 했다.하농이란 농사를 짓되 게을러 알곡 농사보다 잡초 농사를 짓는 농사꾼을 일컫는다.중농이란 부지런하여 논과 밭에서 잡초를 제하고 알곡 농사를 알차게 짓는 농사꾼을 일컫는다.상농이란 곡식을 가꾸기 전에 먼저 근본이 되는 땅을 비옥하게 가꾸는 농사꾼을 말한다.
옛날 농촌마을에서는 어느 가정과 혼사(婚事)를 맺으려 할 때에는 상대가정이 경작하는 논.밭을 먼저 돌아보고 결정했다.그 가정이 가꾸는 농토에 잡초가 무성하고 제대로 가꾸어지지 않았으면 그 집은 하농집안이라 여겨 혼사를 맺지 않았다 .하농집안에딸을 시집보냈다간 얻어먹으러 다니게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삼농(三農)중에서 바람직한 농가는 물론 상농이다.상농인 농가는 가을걷이가 끝나면서부터 다음해 농사를 준비한다.이랑을 깊이 갈고 두엄을 넉넉히 넣어준다.다른 농사꾼들은 농한기라하여 화투놀이나 윷놀이에 열중하는 동안 상농인 농 사꾼은 논.
밭의 땅힘을 북돋워주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그렇게 땅이 잘 가꾸어지면 알곡농사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그런데 인생만사는 서로 통하는 바여서 농사에 통하는 원리가 학문에도,정치에도,나아가 기업경영에도 두루 통하는 것 이라 여겨진다.그래서 농사에 하농.중농.상농이 있듯 학문에도 하학.중학.상학이 있을것이다.말하자면 하학(下學)이란 학문을 익히되 자기 자신의 공명을 얻기에만 급급해 사회에는 해를 끼치는 학문이라 하겠다.중학(中學)이란 기껏해야 자 기 한몸 다스리기에 족한 학문이라 하겠다.그러나 상학(上學)이란 자신의 학문이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보다 많은 이웃에게 유익함을 주는 학문이라 하겠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학문이나 교육을 살펴보면 상학은 드물고 중학은 많은데다 거기서 한걸음 나아가 하학들이 득세하는 현실이아닐까 하여 염려스럽다.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학은 없애고 상학을 높여나갈 것인가가 시대적 과제라 여겨진다.
이 점은 정치판에도 마찬가지다.농사에 삼농이 있고 학문에 삼학(三學)이 있듯 정치에도 삼정(三政)이 있다.
정치가 자기 한몸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추구에 매여 국민들에게 공해(公害)로 머무를 때의 정치를 하정(下政)이라 하겠다.정치가 자기 몫만을 챙겨 나가고 백성과 민족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데까지 나가지 못할 때에 그런 정치는 중정(中政)이라 하겠다.그러나 상정(上政)이란 정치나 정치가가 자신을 돌아보기에 앞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앞세우고 사회발전에 혼신의 힘을 다할 때에 그런 정치를 상정이라 하겠다.
이 나라의 정치가 오늘의 현실인 하정을 벗어나 어떻게 상정으로 나아가게 하느냐의 문제가 국민적인 과제라 생각된다.
일찍이 예수께서 이 점에 대해 한 말이 있다.신약성서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는 지도자를 세 부류로 나누어 말했다.첫째는절도나 강도 같은 지도자,바로 하정에 속하는 지도자다.요즘으로말하자면 거액을 부정축재한 전두환(全斗煥).노 태우(盧泰愚)씨같은 경우다.
둘째는 삯꾼 지도자다.대우 받는 만큼만 일하는 지도자,말하자면 중정에 속하는 지도자들이다.셋째는 백성들을 위해서는 자신을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다하는 지도자,즉 상정에 속하는 지도자들이다.바로 예수께서 그런 지도자의 본을 보여주었 다.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보여준 본보기다.
이런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음이 백성들의 바람이요,하늘의 뜻이다.이런 바람과 뜻에 응하여 나타나는 지도자가 있을 때 백성들은 그에게 기쁨으로 대권(大權)을 맡길 것이다.그렇게 맡겨진 대권으로 이 땅에 상정을 베풀 때 5천년에 쌓인 이 땅의 한(恨)은 풀려나갈 것이다.그래서 통일한국.선진한국의 깃발이 올려질 것이다.
김진홍 목사.두레마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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