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제 떠오른 '미국인간첩혐의'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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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첩보활동을 목적으로 불법입북했다 체포됐다고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미국인 에반 칼 헌자이크 처리문제가 북.미간 새로운 현안으로 등장했다.더구나 북한은 그의 입북이 한국 안기부측 사주에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한국도 이 문제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입북경위를 떠나 미국시민의 신병이 북한당국의수중에 있는 것은 사실인 만큼 미국은 자국민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미국은 우선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북한과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9월 북.미간에타결된 임시영사보호권 부여합의에 따라 연락사무소가 정식개설되기전까지 북한 체류 미국인에 대한 영사보호권은 스웨덴 대사관이 대행토록 돼 있다.
따라서 헌자이크에 대한 1차적 송환교섭은 북한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매개로 진행된다.미측은 헌자이크가 중국여행 도중 단신으로 압록강을 헤엄쳐 건넜으며,신의주 인근 압록강변에서 북한 경비병에 의해 체포될 당시 일체의 소지품이 없었던 점등을 들어 호기심에 의한 단순월경에 불과하다며 즉각송환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북한이 잠수함 침투사건 이후 「국면전환」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그에게 간첩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는 이상 불법월경죄를 적용,단순히 추방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을게 틀림없다.
어떤 형태로든 북.미간 직접접촉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북한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렇게 되면 헌자이크 문제는 단순한 영사보호 문제를 떠나 외교문제로 비화하게 되는 셈이다.미국은 기존의 뉴욕채널을 통 해 북한과 송환교섭을 벌이게 될 것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94년 빌 리처드슨 의원이 평양으로 직접 날아가 휴전선을 넘은 헬기조종사 바비 홀 준위 석방교섭을벌인 것과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다.송환교섭에서는 헌자이크의 입북이 한국 안기부와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일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혹시라도 이 문제로 한.미간 대북(對北)공조에 틈이 생기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정부는「한국피가 섞였더라도 미국인이 분명한 사람을 첩자로 북한에 들여보낸다는 것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난센스」라는 입장을 명확하게 견지함으로써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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