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경제난 타개 '인물'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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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4년동안 심각한 불황을 견디면서 일본관료와 학자들이 마음속에 떠올렸던 인물이 하나 있다.갖가지 해체설에 시달리는 대장성의 한 관료는 『어려울 때마다 우리는 그를 떠올리며 위안을삼는다』고 했다.
1백10여년전의 마쓰가타 마사요시(松方正義).자본주의가 지옥일 수도 있다는 쓰라린 고통,그리고 불황을 거치면서 경제체질은더욱 단단해진다는 교훈을 동시에 일깨워준 인물이다.
1881년 그가 대장상이 됐을때 내전 직후의 일본경제는 파탄상태였다.엄청난 인플레와 함께 재정은 구멍이 났으며 무역적자는걷잡을 수 없었다.
위기타개를 위해 그는 세금을 크게 올리고 정부지출은 철저히 억제했다.화폐가치 안정을 위해 국내화폐의 25%를 불태워 버렸다.국영기업은 과감하게 민영화했다.
마쓰가타재정이라는 이같은 정책에 따른 고통은 엄청났다.쌀과 모직물 가격은 절반이하로 폭락했으며 가혹한 증세에 따라 자작농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일본 경제사 교과서는 이 무렵의 경제상태를 2차대전 패전 이후보다 더 가혹했던 시기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디플레정책에 의해 화폐경제는 안정됐고,풍부한노동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토대가 마련됐다.
미쓰이.미쓰비시등이 국영조선소와 광산을 불하받으면서 재벌의 모습을 갖췄고,상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바뀌면서 일본의 산업혁명은 비로소 시동이 걸렸다.물론 강력한 긴축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황자리를 빼고는 모든 것을 맡 길 수 있다』는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 두 일왕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었다. 그는 두차례나 총리대신을 지냈지만 일본학계는 그를 정치가라기보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대부(代父)」로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울때 한번쯤 떠올릴 수 있는 인물.선진국들은 부작용을 겁내지 않고 경제정책의 정도(正道)를 걷는 마쓰가타 같은 인물을 대개 한두명씩은 갖고 있다.나라경제가 어려울때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한 국도 이제 그런 인물을 한사람쯤 가질 때도 됐다.
이철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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