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불능화까지만 … 핵 폐기는 차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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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핵 검증 압박과 이에 맞선 북한의 불능화 중단으로 강경 대치 상태를 달리던 북핵 협상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쪽으로 다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달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협상을 통해 북·미 대립의 최대 쟁점이던 핵 검증 방안에 대한 의견 접근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선 핵 검증의 대상은 북한이 6월 제출한 핵 신고서에 기재한 영변 핵시설로 국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핵시설과 우라늄농축(UEP), 핵확산 등 나머지 핵 의혹에 대해서는 추가 협의를 거쳐 차후 검증하는 쪽으로 미뤘다는 것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0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우선 신고서를 중심으로 검증작업을 하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까 순차적으로 한다는 입장에서 협상을 해 왔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또 “미신고시설에 대한 검증은 어차피 남의 나라에서 검증하는 것이어서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장관은 또 사찰 방식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사찰할 수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개념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은 불시 사찰과 미신고시설 방문조사까지 요구해 오던 미국이 종전의 입장을 대폭 완화하고 상당 부분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힐 차관보의 협상 결과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최종적인 의사결정과 나머지 6자회담 관련국들과의 의견 조율에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설명했다. 특히 엄격한 검증을 요구해 온 일본과의 조율이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것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국내 정치 일정 및 북한의 협상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의 최종 단계인 핵폐기 협상은 다음 행정부로 넘긴다고 하더라도 2단계 합의인 불능화만은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 지어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에 맞춰 테러지원국 해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힘들게 합의한 불능화를 무산시키고 북핵 협상의 시곗바늘을 뒤로 되돌릴 수 있다는 압박 전략을 구사했다. 결국 부시 행정부 임기 동안 불거진 북핵 위기 해결은 미완의 단계에서 봉합하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당장의 남은 절차는 검증 방안에 대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최종 결재다. 그 사이 북·미 간 세부 조율이 완료되면 북한은 이를 문서로 담은 검증의정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측은 언제든 제출할 준비가 끝났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행정 절차와 6자회담을 열어 검증의정서를 공식 채택하고 에너지 지원 문제 등 비핵화 2단계 합의사항을 마무리 짓는 순서로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 검증에 착수하는 것은 핵폐기 협상(3단계)과 함께 차후로 미뤄지게 됐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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