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對北정책 재검토가 급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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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우리 국민들은 분노했다.그리고 혹자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재확인하고 좌절했다.좌절한 이들은 소리를 죽이고 분노하는 이들만 목청을 높인다.
『그것 보라지.웬 식량지원이고 경제협력이람.』『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줘야 해….미국도 너무 하지.이럴때 화끈하게 남한 편들지 않으니까 북한애들이 꿈깨지 못 하잖아.』 이런 목소리들이 「미국의 대북(對北)연착륙정책 실패」니 「우리의 대북 정책전면 재검토」니 하는 성급한 결론을 부른다.
북한에 실컷 욕을 퍼붓고 남북한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미국을 씹으며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이같은푸닥거리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그러나 날씨가 서늘해져 정신날때쯤 되거든 남북관계를 차분히 생각해 보자.혈 맹이라 막연히 불러온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도 되새겨 보자.
연착륙과 포용정책은 북한을 달래 엉뚱한 짓 막자는 「시간벌기」정책이며, 북한내 급변사태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의 부담이라는점을 이해해야 한다.정부의 단계적 통일방안의 실현성은 차치하고라도 실제 대북정책이 공식천명된 기조와 일치했는 지도 돌이켜 볼 일이다.
걸핏하면 한.미공조를 들먹이지만 남북대화조차 미국의 중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우리가 볼멘 소리로 미국을 비난하지만 미국관리들도 남북한 모두를 부담스러워하는 지경에 와 있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이처럼 간단치 않은 문제들을 모두 짚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대북정책 재검토가 의미를 갖는다.
북한에 대한 분노와 미국에 대한 배신감에서 비롯된 대책이 국민들의 어수선한 정서에 비춰 상쾌할지 모른다.그러나 지난 3년여 북한핵문제로 씨름하면서 아직도 돌아가는 판 읽는 법을 깨우치지 못했다면 남북관계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고 대 미관계는 계속 서먹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난하면서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하자고 성급히 달려드는단선적(單線的) 머리로는 한반도 평화정착이고 남북관계 개선이고생각대로 안 풀린다.무장침투를 탐지하지 못했다고 한.미 방위력강화 운운하는 것도 문제의 핵심과 거리가 있 다.
군사억지력은 국가운영의 양보 못할 기본요건이며 대북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경시할 수 없다.대북정책을 재검토한다지만 안보를 한.미 연합방위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바깥의 목소 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체역량을 겸허하게 챙겨보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성급한 대응책은 또다시 좌절을 부른다.
길정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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