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모르게 동사무소에 쌀배달 시킨 독지가 밝혀져-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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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매년 이맘때면 제주시일도2동 동사무소에는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쌀 1백부대가 배달된다.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14일 배달돼왔다. 올해로 11년째이지만 동사무소 직원들조차 보낸 사람의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 알지 못해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그러다 올해에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드디어 밝혀졌다.
제주시화북동 공업단지에서 포장재료 도매상을 경영하고 있는 양재옥(梁在玉.41)씨.
梁씨는 지난 86년 추석때 라면 1백상자씩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93년부터는 추석과 연말 두차례에 걸쳐 쌀 1백부대(3백60만원 상당)씩을 동사무소에 전달해왔다.올해 처음 梁씨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해 동사무소에 들렀던게 화근(?)이었다. 「얼굴없는 독지가」가 바로 梁씨라고 눈치챈 당시 고경실(高京實.제주도청관광과)동장이 『고맙다』고 하자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돕게 됐습니다』라는 말을남긴 채 돌아간게 전부다.부인 정경례(鄭炅禮.42)씨 도 지난해에야 「눈치」챘을 정도로 아무도 모르게 온정을 펴온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빨래하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쌀을 산 영수증을 발견하고 눈치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도 넉넉지 못한데…』하는 섭섭함도 없는게 아니었지만 남편의 뜻을 알고는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난 76년 전남광산군(현재는 광주광역시광산구)에서 제주로 건너온 梁씨는 지금도 『뭔가 잘못 알고 있다』며 「얼굴없는 독지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제주=고창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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