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젊은 詩魂 편지 27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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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강력한 자기 부정의 정신,반역적인 열정,자기 것.자기의 굳어진 체계를 빠게버릴 수 있는 대담성.이것은 언제나 성실한 작가에게 요청되는 과제인 것입니다.일시의 문명(文名)이나 평가가자기에게 가한 압력에 굴복하거나,그 평가를 유 지하기 위하여 급급하는 태도는 우리 서로 같이 침을 밭읍시다.발길로 탁 차버리자는 말이오.』 젊은 시절 시인 김지하(金芝河.55)씨의 편지가 27년만에 공개됐다.최근 출간된 월간『사회문화리뷰』9월호는 69년 10월부터 70년 4월까지 김지하씨가 동료시인 김준태(金準泰.48)씨에게 띄운 편지 8통을 실었다.두 金시인은 69 년 『시인』지를 통해 나란히 등단했다.시인으로서 구도.제세(濟世)의 발을 내디디며 얼굴도 이력도 모르는 시의 도반(道伴)에게 보낸 이 편지들에는 金씨의 젊은 날의 시혼,이상적 세계를 향한 열망이 푸른 댓잎처럼 나부끼고 있다.
『잔잔하고 색채적인 것 위에 굵고 형상적인,역동적인 것을 배합해야 될 것이란 말은 나의 가장 핵심적인 고민의 중심고리를 직격한 셈이요.…내겐 그것이 머리나 손이나 재치에 의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어떤 목적 밑에,어떤 계층 의 군중들 속에서,어떤 생산적인,그리고 남성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지향을 불태우는 형태의 생활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린 것같습니다.』 잔잔한 것과 역동적인 것을 적절히 배합할 때만 참다운 예술이 나온다는 말이다.특히 그것은 작가의 의지적 삶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金씨는 이러한 예술관을 한(恨)과끓는 피와 원(怨)의 복합적인 정서의 표현인 남도민요 에서 찾고 있다.구천(九泉)을 향해 주저주저 가고 있는 한 서러운 넋의 울음인 상여 노래.그 노래에는 높이와 낮이,좌와 우,앞과 뒤,맑음과 흐림,전체와 세부의 양(量)의 차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의 반복과 그 모든 갈등들의 복합화 과정이 들어있다는 것이다.이 「갈등의 배합 비법」이 바로 金씨 시의 출발점이 된다. 『섬세와 애수(哀愁),또한 마성(魔性)과 폭력은 작가에 따라 어느 한쪽이 강하고 약할 수는 있으나 결정적으로 일면이 배제되어서는 안되고 탁월한 입장에서 통일되어야 할 것』이라고 편지는 밝히고 있다.
『저는 결코 이 말들을 지식,책 속에서 배운 생경한 교리에 의거하여 하고 있지 않습니다.불길과도 같은 저의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에 의거하여 이 말을 드립니다』며 7년 연하의 동료에게 띄운 이 편지에는 金씨의 예술관의 출발점이 솔직하게,내밀하게 드러나 있다.그러나 30년전 이 땅의 젊은이들의 예술과 사회를 향한 보상없는 그 순수 고뇌가 이젠 안타까이 아득한 추억처럼 어른거린다.김준태씨는 『이 말라빠진 20세기 후반기에 김지하시인이 추구했던 시정신이 아직도 확실히 유효하기 때문에 이 편지를 감히 공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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