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in Arts] 바이올린 연주자 오이스트라흐 탄생 10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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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기념하는 따뜻한 바이올린 연주.

베토벤 ‘삼중 협주곡’의 한 앨범(1969년 EMI)에 들어간 사진에서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뒤로 당시의 ‘드림팀’ 트리오가 웃고 있다.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피아노)다. 각 악기의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이 작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자들’이다.

그런데 모두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이 사진 뒤에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오이스트라흐가 카라얀의 연주 스타일에 반대하면서 의견충돌을 빚었던 것이다. 음반 녹음의 생리를 잘 알고, 대중의 취향에도 익숙한 카라얀의 지휘에 오이스트라흐의 고집스러운 연주 스타일이 부딪힌 모양새다. 그래서 수많은 음악 팬의 애장 앨범으로 남은 이 녹음 현장에는 살벌한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이스트라흐는 크고 따뜻한 소리의 상징으로 남은 바이올린 연주자다. 기교가 화려하고 정확하지만 그마저 인간적이고 따스하다는 것이 중평이다.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서방으로 망명하지 않은 고집처럼 음악 또한 우직하고 깊다. 그는 “조국이 내 음악을 키웠다”며 고된 삶을 택했다. 카라얀과의 의견 충돌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이 두 연주자는 같은 해(1908년)에 태어났다. 올해로 꼭 100년 전이다.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지휘자 카라얀의 탄생 100주년은 국내외에서 떠들썩하게 기념했다. 이에 비해 오이스트라흐의 생일은 조용한 편이다. 영국 EMI 본사가 전집 앨범을 냈을 뿐이다. 국내에서는 KBS FM(93.1㎒)의 ‘FM실황음악회’에서 그의 생일(9월 30일)을 전후해 특집 방송을 이달 10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오이스트라흐는 ‘카라얀의 해’로 기록됐던 올해가 가기 전에 꺼내볼 만한 연주자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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