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러시아號' 이끌 航海士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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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전 녹화된 테이프를 통해 텔레비전에 비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은 병색이 완연했다.
그는 러시아 국민에게 자신이 심장병을 앓고 있으며 한달안으로수술을 받을 예정이라는 사실을 밝혔다.지도자의 건강문제가 국가기밀로 다뤄진 과거의 사례에 비춰볼 때 옐친대통령의 발표는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옐친대통령의 대변인은 그가 대통령 선거를 치르느라 피로가 누적되었을 뿐이라며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수개월에걸쳐 발표했던 터라 더욱 충격적이었다.실제 옐친대통령의 건강에는 심각한 이상이 있는지 모른다.그를 보좌했던 한 전직관리는 옐친이 심장병외에 신장에 이상이 있으며 간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옐친대통령은 간헐적으로 우울증 증세도 보이고 있으며 건망증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옐친대통령은 올해 65세다.러시아는 전세계에서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러시아 남성의 평균 수명과 비교한다면 옐친대통령은 보통 남자보다 7년이나 더 살았다.
이번 심장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옐친이 건강을 되찾는다 할지라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수개월의 회복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오랫동안의 업무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근본적인 정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야심만만하고 항상 여러 문제를 몰고 다니는 옐친대통령의 최측근 알렉산드르 레베드 국가안보위원회 서기는 옐친대통령이 수술을 받기전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현행 법에는 일시적 권력 이양에 관한 문제나대통령의 직무수행 불능 상황을 어떤 식으로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조항이 없다.
법은 옐친대통령이 사망할 경우 90일 이내 선거가 실시되기 전까지 체르노미르딘총리가 권력을 승계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을뿐이다. 그동안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들은 유사시 「러시아호」라는 선박의 키를 누가 잡을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험난한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형국이다.
누가 러시아 국내정치와 외교의 최종 결정권을 행사할 것인가.
막강한 규모의 핵무기를 통제할 인물은 누구인가.
옐친대통령의 건강상태는 우려할 만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숱한 난제가 분출하고 있으며 러시아 사회 전반에걸쳐 불안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이는 러시아인들만이 걱정할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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