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춤추는 '장외시장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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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부당국의 각종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4.11총선 직전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이제 선진국수준에 육박한다는 장밋빛 전망이 요란하더니 요즘에는 어느새 경제위기론으로 탈바꿈해 우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자 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자본시장 정책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검토와 분석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졸속정책은 반드시 수정.보완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는 구태를 반복한다.정부는 지난 3월 주식장외시장의 활성화대책을 발표한 이후 1년도 채 안돼 이번에 다시 이를 보완한 대책을 발 표했다.활성화대책이 발표된 이후에도 시장이 이전과 마찬가지인데다 새로 도입한 제도들이 삐그덕거리며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당초 장외시장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하나였다.자금을 확보할 유력한 수단을 주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외기업의 대주주중 상당수가 자기지분을 시장에 내놓지 않으려는 태도로 인해 유통물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항상 거래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각종 세제혜택이 마련되지 않은상태에서 지난 7월 덜렁 장외주식 전문중개회사인 코스닥증권이 출범해 오히려 장외주식의 거래량이 출범전의 절반에 머무르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주식분산 방안의 하나로 도입된 입찰제도 역시 「고가.소량 주문」 우선이라는 탁상정책적 발상으로 인해 너도나도 최소물량으로응찰하는 바람에 1주짜리 주주를 1만명 가까이 양산해 내는 웃지 못할 모습을 연출했다.시한에 쫓기면서 정책을 입안하기보다 충분한 실험과 분석으로 문제점를 해결한 뒤 장기적으로 계획을 입안하는 자세가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대책도 주식분산을 외면하는 장외기업 대주주들에 대한 벌칙조항이 부족해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나오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추진중인 신증권정책은 이처럼 또다시 증시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 돼서는 안된다.정책발표에 앞서 충분한검토와 장기적인 분석으로 차분하게 앞뒤를 따져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앞둔 시점에서더 이상 수사학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홍병기 증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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