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모욕의 침’을 뱉는 그대들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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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품위 있는 사회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신성림 옮김
동녘, 308쪽, 1만5000원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인간맹(盲)’ 속성에 대한 자성을 담고 있는 책이다. “사람을 어떤 ‘물건’이나 ‘기계’로, 또는 ‘동물’이나 ‘인간 이하’로 다루는”, 즉 ‘모욕하는’ 현실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이스라엘 출신 철학자인 저자는 점령 지역에서 봉기(인티파다)한 팔레스타인인과 무너진 공산권 국가에서 이스라엘로 옮겨온 이민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람들의 삶에서 ‘명예’와 ‘모욕’이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상향 ‘품위 있는 사회’를 “모욕하지 않는 사회”로 정의했다.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근거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 “한 사회의 제도가 그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타당할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를 뜻한다.

현실 사회에서 ‘모욕’은 위협과 무례, 명예 훼손, 사생활 침해, 속물근성 등 여러 형태로 표출된다. 모욕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일관성을 버리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정당에 가입해야 자녀가 ‘적당한’ 학교에 다닐 자격을 얻을 수 있다든지, 동료를 고발하는 문서에 서명해야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런 예다.

‘낙인’이 지배하는 사회도 모욕하는 사회다. 피부 색깔과 신체 장애, 마늘 냄새와 아랍의 전통복장, 극심한 비만 등에 사회적 낙인을 찍는 일은 흔하다. 누군가에게 일단 낙인을 찍고 나면, 우리는 그 낙인에 집중하느라 상대를 인간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잃고 만다. 상대를 인간 이하로 바라보는 모욕적인 시선. 낙인의 당연한 귀결점이다.

저자는 사회 정의와 복지·자선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모욕에도 시선을 돌렸다. 복지제도 수혜자들을 동정과 자비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열등한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굶주린 난민에게 음식을 나눠준다며 트럭에서 음식을 던져주는 자선단체와,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선의에 의지해야 되도록 만드는 사회도 ‘모욕’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모욕’ 여부를 가르는 저자의 잣대는 이렇게 엄격하다. 우리 사회 무딘 ‘모욕 감수성’에 대한 때맞춘 경종인 셈이다. 모욕의 대척점에 놓인 인간의 존엄성. 그 가치도 새삼 숭고하게 느껴진다. 원제 『The Decent Society』.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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