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뺀 사람 얘기 … 노선 관심 없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민생단(民生團) 사건은 1930년대 초반 북간도의 항일 유격 근거지를 초토화시켰다. 당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일제에 결탁한 민생단 프락치로 의심받으면서 중국 공산당에게 대거 숙청됐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 죽고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항일혁명가 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사의 한 구석에 묻혀있던 민생단 사건을 최초로 소설로 옮긴 이가 김연수(38·사진)다. 1995년엔 혼자 쓰다가 멈췄고, 2004년에야 계간 ‘파라21’에 장편을 연재했다. 그러고도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또 고치다 4년 만에 완성해 내놓았다. 소설 『밤은 노래한다』(문학과 지성)다.

-새로 쓴 결론은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든다. 개인의 삶은 불합리해 보이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 진실은 내가 보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목격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무겁고 진지하다.

“안 무겁고 안 진지하다. 사건의 내부에 뛰어든 게 아니다. 혁명이 뭔지도 잘 모르는 놈이 주인공으로 나와 간접적으로 목격한다. 결국 애인 죽인 놈 죽이러 찾아 나서는 한 남자 이야기다.”

-연애는 역시 빠지지 않는다.

“옛날엔 전쟁이나 4·19를 쓰면 누구나 공감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생 운동을 다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80년대 이후 생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나라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는데, 마치 ‘일제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도 독립운동을 했을까?’란 반문을 듣는 느낌이었다. 오직 하나 남은 공동의 관심사가 연애다. 연애는 호기심이나 말려드는 강도가 전쟁같은 재난에 가깝기 때문에 쉽게 소통된다. 연애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연애가 나한테 특별한 건 사실이지만.”

-왜 민생단 사건인가.

“왜 자기들끼리 죽이는가가 최초의 의문이었다.”

-자기들끼리 죽인 역사적 사건은 허다하다.

“그렇다. 그래도 따져 보는 거다. 따지고 보면 쌍방이 다 이해가 된다. 오늘은 내가 죽일 수 있고, 내일은 내가 죽을 수 있는 입장에 놓인 사람에겐 미친 짓도 아니다. 지금 살아가는 것도 비슷한 처지 아닌가.”

-결국 역사 보단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난 노선엔 관심없다. 소설로 써서 기억하는 것까지만 내가 할 일이다. 가치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 안의 인물에 덧씌워진 ‘역사’를 빼고, ‘사람’으로 돌아가는 게 내 관심사다. 친구가 나를 죽인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우정이나 믿음이 뭔가가 내겐 훨씬 중요하다. 그건 역사와 관계없이 반복되니까.”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