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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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술대학 산업디자인과 나와 아버지 출판사에서 견습하며 북 디자인을 하고 있다 했다.
준수한 모습과 우람한 가슴을 지닌 그가 믿음직했다.지성과 행동력을 함께 갖춘듯 보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참 빨라요.어느새 늠름한 장정이 됐으니….』 을희는구사장 아들과 악수를 나누며 탄성을 울렸다.풋풋한 복숭아같던 소년을 훤칠한 청년으로 키운 시간의 부피가 아름다웠다.
『어려서부터 출판사 사무실 귀퉁이에서 굴러 자란 탓인지 제작업무는 꽤 아는 편입니다.요즘은 영업 쪽의 훈련도 받아왔습니다.일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데리고 부리십시오.』 열의만 가득할뿐 출판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을희로서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말이었다.
『올해 몇이나 되셨나요.』 『스물일곱입니다.…말씀 낮추십시오.』 을희의 물음에 구(具)청년은 긴장하며 깍듯이 대답했다.
『장가 가셨어요?』 『아직 못 갔습니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에 「여자」를 모르는 청결함이 어렸다.
『새어머니께서 좋은 색시감을 두루 살펴보고 계시겠네요.』 을희는 구사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그는 아내를 여의고도 10년 가까이 독신으로 지내다 몇해 전에 재혼했다.
배필은 출판사에서 오래 일하던 독신녀.남편의 전처가 나타나던날,부산 영도다리를 방황하다 구사장 출판사를 찾았을 때 응대해주던 그 여인이다.
『장가야 자기가 알아서 가는 것이지 누가 보내주는 시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새장가」 든 구사장은 쑥스러운듯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출판사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도서출판 아사달(阿斯達)은어떨까요?』 을희는 조심스럽게 이름을 댔다.
『고조선(古朝鮮)의 도읍인 그 아사달 말씀입니까?』 『네.』『멋진 이름이군요.「아사」라는 우리말의 뜻에 대해서는 구구설(區區說)이 있지만 「최초」 「최고」의 뜻이 있다는 학설이 가장유력한 모양입니다.그리고 「아침」이란 뜻도 있답니다.아침은 하루중 최초의 시간이어서 그렇게 불린 것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일본말로도 아침은 「아사(あさ)」라는 사실입니다.우리 옛말이 일본에 가서 일본어가 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 가운데 한가지라 할 수 있지요.』 구사장은 일본어에 정통했다.아버지 말을 들으며 청년은 뜨거운 시선으로 을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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