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대사관 임대료 싸고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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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 건물의 임대료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3년 미국과 옛 소련이 수교 관계를 맺은 이래 지금까지 줄곧 미 대사관저로 사용돼 온 스파소 하우스는 러시아내 외교 공관중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1917년 건축된 돔양식의 백악관 스타일 건물로 침실과 거실등 방 12개와 화장실 9개에고풍스런 샹델리아와 화려한 실내 장식을 갖춘 명소다.게다가 크렘린 궁전에서 불과 1.5㎞정도 떨어진 도심에 위치해 「금값」과 다름없는 건물로 통한다.
그러나 이 건물의 연간 임대료는 현 시가로 따져 고작 미화 22달러56센트.「대궐」과 다름없는 이 건물의 연간 임대료가 3.8ℓ들이 수입 오렌지 주스 1통 값에 불과한 셈이다.
미국이 스파소 하우스의 임대 계약을 맺은 것은 옛 소련 시절인 85년.당시 양측은 연간 사용료 7만2천5백루블(약 6만달러)에 20년 사용 계약을 맺었다.이후 임대료는 화폐 교환율 변동에 따라 12만루블로 재조정되긴 했다.그러나 러시아 사회내의 인플레이션이 꺾일 줄 모르고 높아만 가면서 루블화의 가치도폭락,요즘엔 12만루블이 미화로 따져 22달러56센트로 곤두박질쳐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연히 러시아측은 재계약을 요구하고 나섰다.스파소 하우스의 건물 값을 감안하면 최소한 연 70만~1백만달러는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측 반응은 냉담하다.당초 계약 만료가 2005년까지로 돼 있는 만큼 『어림도 없다』며 아예 상대조차 않고 있다. 미 국무부가 92년 자체 평가한 이 건물가액은 1천1백30만달러.4년 뒤인 올해 시가는 1천7백만~2천3백만달러선으로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러시아측으로 봐서는 속이끓을 일이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 는 실정.러시아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임대료 문제가 외교전을 방불케 한다』며 『토머스 피커링 미 대사 앞으로 재계약 요구 서한을 보냈지만 9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회답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푸념하고 있다.
워싱턴=김용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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