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시급한 對美 경제홍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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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막무가내로 통일을 외쳐대는 학생들의 호소가 애처롭기도 하지만세계 도처의 처절한 비극적 장면에 묻혀 하루를 보내는 워싱턴에서 바라보면 학생시위가 때로는 안이하다.누구의 잘잘못을 헤아리기 전에 딴 생각없이 챙겨야 할 일들이 한두가지 가 아니다.
마침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올상반기 무역통계를 보며 한.미통상수치에 눈길이 갔다.6월중 한국은 네덜란드.호주에 이어 미국이 세번째로 많은 무역흑자를 기록한 국가로 발표되었다.이 추세라면 올해 대미적자가 1백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려도 과장은 아닌듯 싶다.
정상적 상행위(商行爲) 결과 적자를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통상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기업인과 관리,언론인과 정치인들의 기억 속에 한국이 여전히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또는 불공정한 무역관행으로 악명높은 나라로 남아있다면 이 는 수치(數値)이상의 심각성을 가진다.
한때 무역흑자를 즐길 때는 미국내 비난을 그런대로 감수했다지만 만성적 대미적자국 축에 끼게 된 이상 지난날의 오명(汚名)을 떨치는 노력이 시급하다.
대미흑자가 줄면 통상압력이 사라지리라 기대했던 우리 정부,미국의 요구대로 시장을 개방하면 미국 아닌 다른나라들이 상대이익을 챙길 것이라는 주장이 미국측에 먹히리라 생각했던 우리의 순진함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 니다.결국 우리 입장을 체계있게 설명하는 「차가운 논리」와 얄미워도 별수없게 만드는 「치밀한 홍보」를 결합한 대안만이 남는다.
일본과 대만이 지속적인 대미흑자를 기록하며 끊임없이 통상압력에 시달리면서도 미국을 별수 없이 만들기까지 대미홍보에 투자한비용은 어마어마하다.우리 기준으로 비생산적 투자(?)라면 할 말 없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미국의 통상압력에 주눅들던 시절 앞다퉈워싱턴 현지사무소를 개설하던 한국의 대기업들 마저 문닫고 철수하는 마당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돈으로 미국홍보회사 고용하고 법률자문 받으면 그만이라는,어찌보면 합리적이나 달리보면 오만한 생각은 단견(短見)일 뿐이다.
신임 경제부총리는 정부시책을 믿지않는 지역구민의 예를 들며 각료들이 정책홍보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부총리는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한 미국의 신뢰결핍이 무역적자 수치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임을 잘 아는 인물이다.
상공장관 당시 경제홍보에 남달리 신경썼고,주미대사로서 현지 분위기를 직접 익힌 신임부총리가 대미 경제홍보에 보일 관심이 기대된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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