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 60주년 반성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제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부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법의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법부 수장이 시국 관련 사건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공개 거론한 것은 사법사상 최초의 일이다. 우리는 대법원장의 반성과 다짐이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바람직한 조치라고 본다. 사법 60년이 오욕(汚辱)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법관의 양심과 고뇌가 담겨 있는 많은 판결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기능하고 기초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훼손됐다는 판단에서 이 같은 반성이 나온 것으로 본다.

사법부 구성원들은 ‘신뢰’와 ‘독립’을 강조한 대법원장의 기념사를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기 바란다. 사법권은 국민이 법원에 맡긴 것이다. 국민의 신뢰 없이 유지될 수가 없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다시 강조한 이유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기득권이나 자리 보전을 위해 정치권과 타협한 적은 없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대법원장 자신이 지난 정권에서의 처신이 어떠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경계해야 하고 인기와 여론이 아닌 정의와 양심에 따른 판결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 정권 아래서 법원도 포퓰리즘을 흉내 내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법관은 법치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 스스로 법에 대해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혹시 법을 판단하는 일이 법관들 기득권의 수단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법원에 가면 결국 정의가 밝혀진다는 믿음을 국민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줬다는 사죄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왔다고 본다.

문제는 실천이다. 반성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반성을 실천하려면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2350여 명의 법관들이 과연 그런 고통을 감내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한다. 법관은 성직자와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전관예우니 뭐니 하는 말은 결국 법을 이용해 일신의 안락을 추구하자는 말밖에는 안 된다. ‘문제 있는 판결’과 ‘법관답지 못한 처세’라는 멍에를 계속 짊어져서는 안 된다. 사회가 병들었다 해도 법관만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그 사회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어려운 중에도 훌륭한 법관 선배들이 있었다. 그런 올곧은 선배들을 모델로 삼아 법원에 새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