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 꼬리표 너무길다-돈 갚아도 대출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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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번 신용이 떨어졌다고 해서 계속 「불량거래자」 꼬리를 붙이면 어떻게 합니까.』 중소기업체 사장 朴모씨가 카드대금 1천2백만원을 제때 갚지 못해 「적색거래자」로 분류된 것은 지난 3월.「금융기관신용정보 및 관리규약」에 따라 일단 적색거래자로지정되면 은행돈을 빌릴 수 없는 것은 물론 신용카드도 발급받을수 없 다.
다급해진 朴사장은 부랴부랴 급전을 마련해 연체대금을 갚았고 두 달전 적색거래자 명단에서 빠졌다.그는 『이제부터 은행돈을 다시 빌릴 수 있겠지』하고 은행문을 두드렸다.부동산을 담보로 3억원의 운전자금을 빌리려고 했더니 은행측의 반응 이 냉담했다. 은행관계자는 『적색거래자 명단에서 빠졌다 하더라도 그로부터3년간은 「관리기간」으로 정해 특별관리를 한다』며 『꼭 돈을 빌리고 싶으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받아 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신용보증기금을 찾았지만 신용회복기간 1년을 지나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朴사장은 답답한 나머지 은행연합회에 찾아가 하소연해 봤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올 들어 은행연합회에는 朴씨처럼 불량거래자로 분류됐던 사람들의 민원이 한 달에도 수십건씩 들어온다.
장성부(張聖富)은행연합회상무는 『황색거래자나 적색거래자로 분류됐던 사람들의 대출과 관련한 민원이 너무 많아 일을 처리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은행들이 한번 불량거래자로 지목된 사람에게는 대출을 꺼리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일본등 선진국에서도 불량거래자에게는 일정한 관리기간(5~7년)을 두고 이들이 돈을 빌리려 할 때는 심사를 철저히 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신용평가기법이 발달했기 때문에 관리기간중에도 은행이 스스로 불량거래자의 신용이 괜찮아졌다고 판단하면 대출해 준다.그러나 우리나라는 신용평가기법이 뒤떨어져 있어한번 불량거래자로 낙인찍히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은행연합회에서는 『관리기간중 무조건 대출을 거절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하지만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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