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슬그머니 사라진 日의 과거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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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은 15일로 패전(敗戰) 51주년을 맞았다.그러나 과거에대한 반성인 「전후 50주년 국회결의」를 둘러싸고 떠들썩했던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연립여당내에 설치됐던 「전후50년문제 프로젝트팀」은 올봄부터활동을 중지했다.종군위안부.강제징용등 어느것 하나 제대로 청산된 것이 없는데도 「전후반성」은 일본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목록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대신 최근에는 「평화병(헤이와보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큰일이다.지금 젊은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를 너무 모른다.태평양전쟁때 집에 날아온 빨간 딱지(징집영장) 하나로 전쟁터로 끌려간 윗세대의 비극을 다들 잊고 있다.』『51년간 계속된 평화속에 군복이나 군화는 젊은 여성들의 패션감으로 전락 했다.자위대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은 아예 멍청이 취급을 받는다.』 기자가 최근 만난 한 일본인은 『한국은 병역의무 덕분에 젊은이들의의식이 투철하다니 부럽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단순히 들어넘기기 어려운 측면을 갖고 있다. 「전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에는 물론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사입법 제정,집단자위권 확보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 확대를 염두에 둔 의식적인 부추김도 감지된다.최근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관방장관의 망언이 돌출한배경에도 이같은 흐름이 깔려 있다.
『헌법개정,국군부활』『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되찾자』.도쿄(東京)거리에 나붙은 우익단체들의 선동벽보와 마주칠 때마다 일본이 걱정할 것은 「평화병」이 아니라 「과거망각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재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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