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과잉 상업주의.오만한 애국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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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영국 BBC방송의 경제담당 특파원 제임스 모건은 다음과 같이이죽거렸다.『이번 애틀랜타올림픽은 세계의 모든 나라를 단결시켰다.여기에 오직 한 나라만 빠졌다.1백96개국이 단결하여 한 나라를 상대로 싸우는데서 생겨난 단결이다.그 한 나라는…미국이다.』 잔치 끝에 마음 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이유도 여러가지다.각기 잿밥 챙기는데만 급급하다가 큰일 치르는 격식이 서로다르기 때문에,너무 저만 잘났다고 뻐기려들다가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이번 잔치의 주인인 미국의 경우는 좀 심했다.
첫째,이 잔치에 참가하는 모든 손님을 봉으로 삼아 완전히 깝대기를 벗기기로 처음부터 단단히 작정하고 덤볐다는 점이다.그냥보통 상업주의가 아니었다.욕심이 과하면 실물(失物)수를 당한다는 말이 있다.깝대기 홀랑 벗기기식 상업주의는 손님을 쫓아버린다.할 수없이 그것을 당한 손님은 억울해서 「원성(怨聲)그룹」으로 단결한다.
예를 들면 미국 남자팀이 금메달을 딴 양궁 단체 결승전의 경우 매표구에는 27달러짜리 당일 입장권이 아직도 잔뜩 남아 있었다.이번 올림픽에서는 모든 값이 아수라 판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미리 겁을 먹고 관객이 싹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암표상은 미리 대량으로 사두었던 표를 할수없이 정가인 27달러에 판다고내장객들에게 다가 왔다.그러나 사정을 파악한 이곳 관객들은 값을 후리쳐서 한장에 10달러로 사고 있었다.이렇게 실물수를 당한 것은 암표상만이 아니었다.노점상. 호텔등 김칫국부터 마시는격으로 값을 크게 부풀렸던 모든 상인이 손님이 없어 제풀에 손해를 보게 되었다.외국 손님이 없는 이번 올림픽은 기념 배지와음료수밖엔 별다른 물건을 사지 않는 자기 나라 손님들로만 붐볐다. 한가지만 예를 더 들자.기자들이 사용하는 자동차에 대해서프레스센터와 경기장 주차장의 주차료로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대회기간중 한대에 2천달러를 미리 받아 갔다.그렇게 산 딱지를 앞유리창에 붙이지 않은 차는 올림픽 링(시내 중심구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뿐더러 나중에는 주차료가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모른다는 엄포 때문에 외국 기자들은 대부분 그 말을 따랐다.
그러나 막상 올림픽 링 안 일반 자동차 출입은 통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장 부근 개인집들이 모두 마당을 주차장 영업에내놓는 바람에 경기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한번에 10달러,잘 만나면 5달러에도 주차가 가능했다.게다가 이런 개 인집 마당 주차장은 대부분 애틀랜타올림픽위원회가 마련한 주차장보다 경기장으로부터 훨씬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그러니 더 좋은 주차장을 쓰고도 올림픽기간중 적으면 1백달러,부지런히 돌아다녀도 4백달러만 들이면 될 것을 2천달러나 낸 것 이다.
둘째는 외국 선수와 손님을 데려다 놓고 이들을 자기네 애국심을 부추기고 그것을 즐기는 스파링 상대역으로만 삼은 것이다.여기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것이 2008년까지 올림픽 TV방송세계 독점권을 따낸 NBC방송이다.
외국이 아닌 미국에서 경기가 열리면 그것을 보려고 이곳에 와있는 수많은 외국손님을 위해서 방송시간을 조금씩은 다른 나라끼리 붙은 경기에도 할애하는 것이 도리였다.그런데도 NBC는 미국선수가 나오지 않는 경기는 전혀 중계하지 않았 다.예외가 있었다면 최종일 거행된 마라톤 뿐이었다.미국에 이민와서 사는 한한국 아주머니는 마라톤은 경기성격이 예선과 결선단계가 없으니까그렇게 되었다며 NBC의 미국선수 편중 방송 쇼비니즘이 통할 수 없게 된 점을 통쾌해 마지 않 았다.
경기장의 미국관중 태도도 그랬다.외국선수라도 미기(美技)가 나오면 박수를 쳐준다는 아량은 볼 수 없었다.좋게 말하면 이 세상에 미국사람들처럼 애국심이 강한 국민도 없다고 하겠다.그러나 미국의 세계 권력 독점이란 현실 배경 속에서 보면 이런 태도는 애국심이 아니라 「오만과 편견」에 불과하다.그래서 미국인들을 위해서,그리고 그들의 어깨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는 세계 평화를 위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솔하다고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NBC방송의 이런 올림픽 중계 내용을 놓고 뉴욕 타임스 신문은 참다 못한듯 8월2일자 머리 사설에서 「NBC의 외국선수 무시(無視)는 일찍이 어떤 방송에서도 전례가 없었다」고 비판했다.그러나 이 강력한 비판 사설도 오히려 때리는 남편에 말리는 시어미 격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였다.
(애틀랜타에서.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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